탄핵정국 장기화로 정유와 석유화학 업계의 시름이 더 깊어졌다. 국정 불안으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며 실적 불확실성이 커진 탓이다. 수출 중심 포트폴리오를 갖춘 정유사들은 환율 급등으로 인한 환차손 관리에 비상이 걸렸고, 석유화학기업들은 중국발 공급과잉 리스크에 원가 부담까지 높아져 장기적인 불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유 및 석유화학기업들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급등한 환율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정유업계의 경우 환율이 높아지면 원유 수입 비용 증가로 인한 환차손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환율이 10원만 상승해도 정유업계의 환차손은 1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통상 환율이 상승하면 원화 가치가 하락해 수출기업에겐 호재로 작용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 수입을 통한 재수출 과정을 거쳐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석유제품 수출 비중이 매년 급감하는 가운데 환율 상승은 장기적으로 재고자산 평가 손실까지 이어질 수 있어 정유사들도 치명타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중국발 공급 과잉 등의 여파로 장기간 침체를 겪고 있는 석유화학업계에는 고환율로 인해 자본잠식 위기까지 고조되고 있다. 환율 급등은 곧 주요 원자재 수입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해외 법인 의존도가 높은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경우 환율 변동으로 인한 환차손 리스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대규모 손실 누적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석유화학 빅4 중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은 올해 3분기 일제히 적자를 냈다.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금호석유화학도 영업이익 6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7% 감소했다. 시장에서는 국내 석유화학 최대 수출처인 중국이 곧 석유화학제품의 완전 자급에 성공할 전망인 만큼, 내년에도 업계의 실적 회복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에 정부도 최근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본격 예고했지만, 비상계엄 이후 정부의 석유화학 산업 지원책 발표도 미뤄진 상황이다. 또 이번 비상계엄 선포로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방한이 취소돼 석유화학 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면담도 무산됐다. 정국 혼란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석유화학산업 현안이 기약 없이 밀려나게 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중국과 중동의 국제적 리스크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에게 계엄은 분명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특히 지속된 불황으로 정부 지원책이 누구보다 시급한 석화업계의 경우, 정부 대책 발표가 지연되며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주경제=이나경 기자 nakk@aj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