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매섭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무한한 공급망을 기반으로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서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며 저가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에 맞서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 강화와 공급망 다변화로 방어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고대역폭메모리(HBM)보다 기술 난도가 낮은 범용 메모리 제품을 자국 시장에 싸게 쏟아내고 있다. 이를 통해 몸집을 키우는 데 성공한 이들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며 레거시(범용) D램 가격을 불과 넉 달 사이 35%나 추락시켰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지난 3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배경 중 하나로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 증설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 하락을 이끌었다고 지목한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범용 D램 가격 하락을 이유 꼽으며 두 회사의 목표가를 내렸다. 중국 기업의 공세로 범용 D램의 가격의 약세가 기존 전망 대비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미국 정부의 기술 제재를 받는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푸젠진화(JHICC) 등이 증설에 박차를 가하면서 전통 반도체 공급과잉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CXMT의 올해 모바일 D램 시장 점유율이 비트 기준 9.0%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더해 저가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서버 D램 시장까지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는 서버 D램 시장에서 중국 창신메모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과 경쟁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단 얘기다. 중국 업체 공세에 따른 국내 기업에 대한 영향은 지속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전망한 삼성전자 4분기(10~12월) 영업이익 예상치는 3개월 전 14조7178억원에서 9조7221억원으로 33%가량 쪼그라들었다. SK하이닉스 예상치도 같은 기간 8조5247억원에서 8조903억원으로 5%가량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미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와 중국 업체 공세에 따른 메모리 부문에 대한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K-배터리’ 위기론도 커지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합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3년 전 30%대에서 20%대로 추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 CATL과 BYD(비야디)의 합산 점유율은 39.7%에서 53.6%로 상승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의 점유율을 고스란히 가져간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배터리는 물론 한국 주력 산업인 철강, 석유화학은 중국발 물량 밀어내기에 따른 타격이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며 “트럼프 2기 내각의 반도체 보조금이나 관세 부과 정책 방향성이 잡힐 때까지 당분간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아주경제=이효정 기자 hyo@aju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