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4년 더 집권하고 난 이후의 세계와 미국의 모습은 어떨까. 미국 대선 이후 나는 타국 외교관, 미국 공무원, 기업 임원 등 많은 사람으로부터 이 같은 질문을 받아왔다. 변동성이 큰 미국 대통령과 변동성이 큰 세계가 충돌하는 일인 만큼 결괏값의 범위는 엄청날 것이다. 아마 트럼프 당선인 본인도 이 격변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정확히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볼 수 있는 5가지 시나리오는 부흥, 거부, 탈선, 재조정, 혼란이다. 먼저 트럼프 당선인은 역사적인 미국의 '부흥'을 약속하고 있다. 더 똑똑하고 강인한 초강대국이 마주한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이 '거부'나 '탈선'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이 추구해온 글로벌 리더십을 승계하길 '거부'하거나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를 공격하는 독재자들과 공동의 대의를 도모하는 '탈선'을 자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골치 아프지만, 생산적으로 미국 전략을 '재조정'하거나, 미국에 만연한 '혼란'이 나라를 약화하고 더 큰 글로벌 혼란을 야기하는 시나리오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전역과 그 너머에 공격적인 체제 전복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 핵 개발에 근접한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혼란의 근원으로 남아 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상업용 선박을 테러하고 미국 군함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이란을 약화했다.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만 극단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파급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은 냉전에 갇혀 있고 중국은 대만을 둘러싼 잠재적인 실제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앞세워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다. 모든 대통령은 자기가 불타는 세상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진짜 그렇다.
①부흥 :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군대 트럼프 당선인의 솔루션은 간단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의 과거 영광을 되찾겠다고 약속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세계적 위상을 되찾으려는 것처럼, 트럼프 당선인은 시대의 '부흥'을 약속하고 있다. 그는 미군을 재건하고 동맹국들이 공동 방위 비용을 지불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미국의 억지력을 강화할 것이다. 양측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고, 미국이 전쟁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새로운 전쟁을 방지할 것이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멕시코가 마약과 이민자의 유입을 중단하도록 강제하며, 제재로 위협해 각국이 달러를 버리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MAGA' 메시지가 지닌 세부 사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했지만, 기본 골자는 변하지 않았다. 미국이 더 대담하고 더 강압적으로 힘을 행사하면 평화, 번영, '미국의 지배'라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전문가들은 이런 접근 방식이 매우 엉뚱하다고 조롱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국제 시스템에서의 중심성은 미국에 엄청난 영향력을 부여한다. 따라서 무임승차 하는 동맹국에 포기를 위협하고, 경쟁국에 극심한 경제적 압박을 가하며, 모든 사람이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지 추측하게 만드는 미국이 정말 강경해지면 외교 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동맹국들은 이미 더 높은 지출 목표를 설정하고 방공과 같은 중요한 영역에서 능력 격차를 메우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나토를 탈퇴하고 주한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 기존 무역 협정을 탈퇴하거나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높은 관세를 사용해 협정을 사문화시킬 수도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같은 최전방 국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민주적 가치와 인권 증진을 중단할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사드 정권 이후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혼란스럽고 지저분한 상황에서 손을 뗄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여전히 매우 위대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거부'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더는 자유주의 세계의 수호자가 아니게 된다.
이 시나리오는 극단적이지만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오랫동안 미국의 동맹에 대해 불만을 품어왔으며, 한때 "무역은 나쁘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자선의 일종으로, 대만을 경제적 경쟁자로 일축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숙고해왔다.
트럼프 1기 시절에는 주류 측근들이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재건됐고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충성파'로 채워지고 있다. 아마 트럼프 2.0은 더 순수한 버전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울 것이고 이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이 국제 질서 유지 사업을 그만두면 불안정한 세계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거부' 시나리오는 나쁜지만 최악은 아니다. 진짜 최악의 시나리오는 트럼프 당선인이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국제 질서를 공격하는 독재 국가의 편에 서게 될 경우다. 트럼프 당선인이 러시아의 공작원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성향 중 일부는 미국의 경쟁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은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처럼 강대국과 위대한 지도자가 제약 없이 활개 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선거 결과를 전복하려 한 트럼프 당선인은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 트럼프 당선인이 가장 일관되게 찬양하는 지도자는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같은 독재자들이지 자유세계의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다.
'탈선' 시나리오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지배를 초래하는 평화 협정을 수용하도록 강요할 수 있으며, 이는 일부 추종자들이 제안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중국의 경제적 양보를 대가로 위기 상황에서 대만을 방어하지 않음으로써 대만을 팔아넘길 수도 있다. 유럽에서 분열과 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오르반 총리를 비롯해 푸틴 대통령과 친밀한 비자유주의 포퓰리스트들을 응원할 수도 있다.
처음 세 가지 시나리오는 극적이고 심지어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좋든 나쁘든 혁명은 성공하기 어렵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의 정책을 파괴하지도, 되살리지도 못한다면 대신 '재조정'하는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미국은 1945년부터 세계를 이끌어 왔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더십 스타일이 변화해 왔다. 1970년대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금본위제를 폐기하고 미국의 패권적 부담을 줄이는 변동환율제로 전환했다. 그는 아시아의 육지 전쟁은 물론 은밀한 개입에도 작별을 고했다. 미국은 소련과 데탕트(긴장 완화)를 추구하고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중국과 화해를 모색했다. 이 모든 것은 외교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궁극적으로 활력을 잃어가던 전후(戰後) 프로젝트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었다.
문제는 '재조정'이 규율과 섬세함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오래된 협정을 흔들기에 충분히 파괴적이어야 하지만, 완전히 깨뜨릴 정도로 파괴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는 미국 주도의 질서가 지속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종종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당선인에게는 어려운 작업일 수 있으며, 그의 다음 4년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다.
우리의 마지막 시나리오는 만연하고 심각한 '혼란'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충성스러운 사람들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 루비오 상원의원과 차기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조차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바꾸고 줄을 서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 당선인의 두 번째 임기가 순탄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드라마가 펼쳐질 잠재적 원인은 많다. 트럼프 당선인의 측근들은 주요 이슈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루비오 의원과 왈츠 의원 같은 이란 '매파'는 차기 국가정보국(DNI) 국장 지명자로 지명된 털시 개버드 전 하원의원처럼 "더는 전쟁은 안 된다"는 강경파와 충돌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명하는 대부분의 인사는 대규모 관료 조직을 관리한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으며, 일부는 자신이 운영하는 부서와 전쟁을 벌이기를 희망하며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연방 관료제를 재편하려는 싸움도 행정 혼란을 야기해 정책 실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끊임없는 내부적 논란은 귀중한 시간과 관심을 소모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반대자들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길 응원할 수도 있지만, 미국이 정신을 못 차리면 세계의 혼란은 더욱 심해질 뿐이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 고등국제학대학원(SAIS) 석좌교수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Trump’s Worldview Isn’t as Unpredictable as You Think’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