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로 사실상 최고통치권자의 유고 상태다. 이럴 때 경제와 안보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려면 어떤 방책이 필요한가.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정경일체(政經一體)가 되어 신속하고, 단호하며, 투명하게 행동함으로써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기에 혼란을 최소화하고 경제와 안보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선 여러 필요한 조치들을 시행해야 한다. 첫 번째는 정치적 안정과 제도적 복원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헌법 절차를 준수하는 게 급선무다. 탄핵 절차가 법에 따라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과도기적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통치 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적 대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정치적 차이보다 국익을 우선시하기 위해 정당 간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 두 번째는 경제를 안정시키는 일이다. 먼저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주요 경제 정책을 유지하고 시장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피하는 것이다. 금융 부문 지원도 긴요하다.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은행은 금리 조정과 유동성 지원 등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할 수 있다. 아울러 투자자를 안심시키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한국의 장기적인 경제 펀더멘털을 강조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또한 일시적 부양책으로써 필요한 경우 중소기업 지원, 고용 안정, 소비자 신뢰 회복을 위한 단기 대책을 도입하는 것이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중소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재정 지원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은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세 번째는 안보와 국방 조치를 단단히 챙기는 일이다. 먼저 군사 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북한의 중대한 안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군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비태세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지역 동맹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동맹국, 특히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외부 위협을 억제해야 한다. 내부 불안 방지도 중요한 안보 사항이다. 시위나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적절한 보안 조치을 취하면서 시민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네 번째는 대중과의 소통과 투명성을 확대하는 일이다. 열린 소통을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부 관계자는 잘못된 정보와 유언비어가 퍼지지 않도록 상황에 대한 업데이트를 자주 제공해야 한다. 동시에 대중의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대중의 우려를 인정하고 거버넌스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먼저 위기관리 태스크포스를 설치한다. 고위급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새로운 문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해결한다. 에너지, 통신, 교통 네트워크를 포함한 중요 인프라를 보호하고 서비스 중단이 없도록 현장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국제 외교를 챙겨야 한다. 국제사회와 긴밀히 소통해 한국의 무역 파트너와 동맹국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악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외부 행위, 이른바 ‘지정학적 착취’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해온 국가위기 관리의 기본적인 프로토콜이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흥분해 불안정한 탄핵 정국에서는 기본을 망각함으로써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치닫는 것을 외국 사례에서 자주 목격해 왔다. 다행히 우리는 2004년 3월 12일부터 2004년 5월 14일까지 진행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소추·심판사건(노무현 탄핵소추)의 와중에서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슬기롭게 수행한 경험이 있다. 세계 주요 미디어들은 이번 한국의 탄핵 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칭찬하면서도 이 사태를 얼마나 이른 시일 내에 극복하고, 과연 이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설타임스는 며칠 전 한국의 탄핵 사태와 관련해 '정치적 무권위(No political authority): 한국의 임시 지도자가 직면한 어려운 과제'라는 내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현재 한국 상황은 노무현 탄핵 소추 때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위기의 늪에 빠져 있는 시기와 미국의 새 정부 출범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와 ‘아메리카 퍼스트’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 정권이 펼칠 강권 외교에 벌써부터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행정과 외교의 커리어가 이미 나라 안팎에서 공인된 인물이다. 과거 노무현 탄핵 정국 때도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을 보좌한 이력이 있다.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경제계가 한덕수 권한대행에게 기대하는 이유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특히 미국 정치·경제 상황 전개를 파악해가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새로운 경제협력의 실마리를 찾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주특기를 살리는 길일 것이다. 일부 경제 전문가는 트럼프 정부가 기축으로 삼는 ‘공급 중시 경제정책’을 잘 분석해 보면 차제에 한국 경제를 재흥(再興)시키는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재무부 장관으로 지명한 스콧 베센트는 공급 중시 경제정책 옹호자다. 그의 경제 철학은 재화와 서비스 공급을 늘려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을 강조하는 공급 중시 경제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는 일반적으로 세금 감면, 산업 규제 완화,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을 위한 자유시장 원칙 장려 등이 포함된다. 트럼프는 2017년 취임 이후 감세·일자리 법안과 다양한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노력과 같은 공급 중시 정책을 폈다. 베센트는 3-3-3 원칙을 내세운다. 그는 재정적자를 GDP 대비 3%로 줄이고, GDP 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고, 산유량을 하루 300만배럴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3-3-3 규칙'을 시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베센트의 접근 방식은 정부 개입을 줄이고, 민간 부문의 성장을 촉진하며, 경제 효율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정치·경제에 나타날 '일런 머스크' 효과도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는 얼마 전 SNS를 통해 취임 첫날 멕시코과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경제학의 기본 이론에 의하면 관세의 비용은 결국 수입국 소비자와 수출국 기업이 부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관세 보복 전쟁이 벌어진다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차기 정권(트럼프 2.0)에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화부를 자문기관으로 신설했다. 이는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 중시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2조 달러(전체 지출의 약 30%) 지출 삭감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최근에는 국제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포함해 5000억 달러 이상 삭감을 제안했다. 이는 의회가 승인하지 않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지출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세, 규제 완화, 작은 정부의 조합은 미국 민간 기업의 애니멀 스피리트(도전 정신)를 자극하고 개인 소비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것이 실현된다면 관세로 인한 경기 하방효과를 상쇄하거나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 믹스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소니파이낸셜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가노 마사아키는 “정부 기관의 대폭 축소는 다양한 마찰을 일으키고 미국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질 수 있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밀월 관계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향성을 강화하는 트럼프 2.0에서 이러한 정책이 잘 작동하면 미국의 내수 진작을 통한 새로운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일런 머스크 효과’에 힘을 주듯이 트럼프는 지난주 법무부 반독점 국장에 밴스 차기 부통령의 정책 고문을 지낸 게일 슬레이터를 임명하고,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는 현 위원인 앤드루 퍼거슨을 승진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대로 바이든 대통령의 적극적인 기업 규제와 거리를 두고 스타트업의 성장과 기술 혁신을 중시하는 인물이 선임돼 M&A(인수합병)도 원활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강경 노선만은 대체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AI·가상화폐 차르(총책임자)’에 데이비드 색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명했다. 색스는 오랫동안 실리콘밸리 권력 구조의 중심에 가까이 있었다.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었던 그는 수년간 페이팔의 최고운영책임자를 역임했으며 일론 머스크와도 가까운 사이다. 색스는 자신의 팟캐스트와 소셜 미디어에서 트럼프의 친산업적 입장이 기술 산업의 혁신을 촉진하고 성장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의 세상은 더 위험해졌다. 두 곳의 지역 전쟁, 미·중 경쟁 심화, 러시아와 이란·북한이 일으키는 심각한 혼란, 세계 경제의 침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파괴적 기술이 트럼프 1기와는 전혀 다른 요구를 정권에 던질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의 영향은 광범위하다. 거래 중심의 외교 스타일과 초강대국 대통령의 영향력이 자칫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동될 가능성이 높다. 한덕수 권한대행과 정치권은 탄핵 사태에 따른 내정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노력 이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그에 따른 외세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비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진정한 길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아주경제=곽재원 논설위원장 kjwon5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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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의 Now&Future] 눈 크게 뜨고 나라 밖을 응시하자
[곽재원 논설위원장]한국은 지금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로 사실상 최고통치권자의 유고 상태다. 이럴 때 경제와 안보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려면 어떤 방책이 필요한가.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정경일체(政經一體)가 되어 신속하고, 단호하며, 투명하게 행동함으로써 정치적 불확실성의 시기에 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