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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상량문에 담긴 뜻

아기 백일·돌에 건강·복을 빌 듯
집 지을 때도 성스러운 의식 거행
시대 바뀌니 형식·글귀 변하지만
의미만큼은 끊임없이 재해석을


우리는 살면서 여러 의식을 치른다.
아기가 태어나 백일과 돌이 되면 삼신할머니께 미역국과 흰 쌀밥을 차려 아기의 건강과 복을 빈다.
이외에도 입학식, 졸업식, 취임식, 이임식, 결혼식, 장례식 등 수많은 의식이 인간사에 뒤따른다.
이들 의식은 우리가 사회의 일원임을 일깨우고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삶을 풍성하게 한다.

집을 지을 때 행하는 의식도 마찬가지였다.
집은 우리 삶의 중요한 근거지이고 많은 돈과 노력이 드는 특별한 것이라 그 의식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공사를 하기 위해 터를 닦기 시작할 때 그 내용을 산천과 사당에 고하는 ‘고유제’를 지내고 집의 골조를 완성하였을 때는 ‘상량식’을 거행했다.
특히, 상량식에서는 상량문을 지어 골조의 최상부 적당한 곳에 홈을 파고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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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상량문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서두에, 그 집을 짓게 된 연유와 집주인의 인품, 공사 참여자, 상량 일시 등을 적는다.
그다음 동, 서, 남, 북, 상, 하 여섯 방향에 따라 축시(祝詩) 여섯 수를 짓는다.
이어서 상량 후 좋은 일이 이 집을 통해 많이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글귀로 마무리한다.

현종 8년(1667), 종묘 영녕전 개수(改修) 상량문 서문에는 공사의 당위성과 백성을 동원하는 데 민폐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 진실로 생각건대, 조상에 보답하고 제사 지내는 것은 성인께서 반드시 공경하는 일이고, 옛것을 수리하고 새롭게 개수하는 것은 왕정(王政)의 급선무이니 (…)”

“(…) 우리 주상께서는 늘 선조에 대한 간절한 유업을 잘 이어 나갔노라. (…)”

“(…) 길년(吉年)을 기다려 공사를 시작하니 (…) 노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공사장에 가게 하였으니 어찌 백성을 병들게 함을 걱정하겠는가. (…)”

서문에 이어지는 축시는 맨 먼저 ‘아랑위포량동(兒郞偉抛樑東)’이란 정형화된 문구로 시작한다.
‘아랑위포량동’ 다음에는 세 줄의 시구가 나와 한 수의 축시가 마무리된다.
그다음은 ‘아랑위포량서’와 세 줄의 시구, 이런 식으로 동, 서, 남, 북, 상, 하 여섯 수의 축시가 이어진다.
영녕전 상량문의 축시를 보면,

“아랑위포량동 / 맑은 봄날 낙산에 아침 햇살 붉구나 / 모든 영령이 수놓은 문, 길이 보호하니 / 만년(萬年)토록 좋은 기운 성대히 머무르리라”

“아랑위포량서 / 금원에 서리와 이슬 내려 밤이 서늘하네 / 제관이 제사 지내려고 벽돌 사당 길 가니 / 악기에 맞추어 일제히 일무를 추네”

“아랑위포량남 / 전각에 부는 훈풍 나무들이 머금네 / 맑은 그늘 펼쳐 온 나라에 나누어 주고 / 당시 남기신 교화 지금까지 이르렀지”

“아랑위포량북 / 별들이 흩어져 북극성 둘러싸네 / 변함없이 남쪽을 바라보는 군왕의 병풍 / 천년(千年)토록 사당을 공경히 우러러보리라”

“아랑위포량상 / 상서로운 구름 아득히 의장(儀仗)을 가리네 / 참된 저세상 제향이 멀다 마라 / 뵙는 듯 지극정성에 신령이 흠향하리라”

“아랑위포량하 / 도성의 연무가 수많은 기와를 감쌌구나 / 성은으로 물산이 풍부하고 백성이 평안하니 / 환호와 기쁜 기색은 조야가 모두 같네!”

여기서 ‘아랑위’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어여차’의 의성어라는 설이다.
그다음 이어지는 던질 포, 들보 량, 동녘 동과 어우러져 ‘어여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라고 해석한다.
다른 하나는 명나라 학자 서사증(1517~1580)의 ‘문체명변(文體明辨)’에 기록된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다.
이 고사에 따르면, 육조시대 이래 건축물의 골격이 완성된 뒤에 길일을 잡아 들보를 올리며 상량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친지들이 음식을 싸 와서 축하하고 목수를 대접한다.
그러면, 목수의 우두머리인 도목수가 들보 위에 걸터앉아 만두와 떡 등 제물을 사방과 위아래로 던지며 상량문을 읽는다.
우리 상량식도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할 때 ‘아랑위’는 의성어가 아니라 젊은이를 일컫는 ‘아랑’의 복수형으로 도목수가 장인들을 부를 때 통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해석하면 ‘아랑위포량동’은 ‘여보게, 들보 동쪽으로 떡을 던지세’쯤이 된다.

또, 아랑위포량동, 서, 남, 북, 상, 하로 이어지는 시구에는 각 방향에 해당하는 사물을 노래한다.
첫 시에 나오는 ‘낙산’은 영녕전의 동쪽에 있고, 두 번째 시에 나오는 ‘금원’은 궁궐의 후원으로 서쪽에, 세 번째 시에 나오는 ‘나무들’은 남쪽에, 네 번째 시에 나오는 ‘북극성’은 북쪽에, 다섯 번째 시에 나오는 ‘구름’은 위에, 여섯 번째 시에 나오는 ‘도성’은 임금이 다스리는 아래에 있다.

축시 뒤에는 ‘복원상량지후(伏願上梁之後: 삼가 바라옵건대 상량 후에는)’라는 말을 시작으로 기원하는 문구로 끝을 맺는다.
영녕전 상량문에는 “삼가 바라옵건대 상량한 후에는 국운이 장구하고 하늘의 아름다움이 더욱 이르리라. 효손에 경사가 생기리니 만년 장수하길 돕고 선왕을 잊을 수 없으니, 멀고 오랜 세월 동안 혈식(血食: 종묘 제사 때 쓰는 생고기, 즉 희생)을 받으리라”라고 했다.

전통에서 현대로 시대가 바뀌니 의식도 달라졌다.
결혼식과 장례식 등 인간사의 중요한 의식도 그 형식이 예전 같지 않다.
상량식과 상량문의 형식과 글귀는 잊히고 기록으로만 남아 있다.
현대는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그 전의 것은 형식이든 내용이든 답습하지 않는 시대라 의식 또한 정해진 틀이 없어지고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그래도 옛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끊임없이 재해석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현재가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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