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올해 가상자산 법인계좌 발급을 허용키로 했다. 미국과 유럽을 필두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상자산이 제도권으로 편입됨에 따라 이에 발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다만 업계 기대감이 높아진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과 관련해선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원회는 8일 발표한 '2025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법인의 거래소 실명계좌 발급을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명시했다. 다만 세부 방안은 작년 하반기 출범한 금융위 가상자산위원회 논의를 거쳐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첫 가상자산위는 이달 15일 열릴 예정이다.
금융위는 업권법 성격의 2단계법 제정도 추진한다. 작년 7월 1단계법인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됐지만, 투자자를 비롯한 이용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가상자산의 특성을 반영해 관련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포괄적 성격의 법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해 자율규제도 개선한다. 일례로 상장기준 정립과 스테이블 코인 방향성 등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첨단 포렌식 장비 도입 등을 통해 가상자산 불공정행위 조사 방법도 고도화할 계획이다.
금융위 금융정보분석원(FIU) 관할법인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을 통해 가상자산사업자 대주주 적격성 심사제도도 도입한다. 그동안은 유권해석 등을 통해 진행해온 심사에 법적 근거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금법 개정을 통해 사회적 신용 요건도 추가할 예정이다. 당초 이는 2024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도 담겼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는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안을 통해 의원입법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업계에선 가상자산 법인계좌가 허용될 경우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표해왔다. 한국은 개인투자자 거래량으로는 1위 국가로 꼽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3위에 머물렀다. 이는 개인투자자 중심의 한국 시장 특성이 반영된 영향이다. 전 세계 1위 시장은 단연 미국으로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제공하는 가상자산 현물 ETF를 통해 유입되는 간접투자 형태 자본이 뒷받침한다.
법인계좌 허용으로 국내 5대 원화거래소 중에서도 1위 사업자인 '업비트' 점유율 쏠림 현상이 완화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작년 12월 초 비트코인 상승장에서 업비트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8% 수준까지 뛰기도 했다. 한 달 전 57%에서 21%포인트나 뛴 것이다. 2위 빗썸은 19.3%로 하락했으며, 코인원과 코빗, 고팍스 등 3~5위 거래소의 합산 점유율이 1%를 밑돌았다. 거래소 관계자는 "자연스럽게 개인 투자자들이 케이뱅크와 제휴한 업비트로 몰렸고, 이후 우수인력이 업비트로 향하면서 이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법인은 다양한 제휴 조건을 내걸 수 있기 때문에 후발 업체들이 경쟁해볼 만한 요소들이 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시장의 관심도 금융당국이 국내 가상자산 현물 ETF 허용 여부에 쏠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작년 1월 법원에서 상장 승인 거절 결정과 관련해 패소를 함에 따라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일제히 상장 승인했다. 앞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연초 증시 개장식에서 "가상화폐 ETF 등 신규사업에 대한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 자본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밝혔고,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도 올해 신년사에서 "가상자산 ETF 등 디지털 자산시장이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전일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 "이는 좀 많이 나간 것 같다"며 "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있다는 것을 정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가상자산위원회를 통해 논의해나간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가상자산의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문제는 2년 유예됐지만 앞으로 고민이 필요하다"며 "기업의 경우 보유한 가상자산의 수익 증감 등에 따른 회계처리 문제 등이 남아있을 텐데, 처음부터 제한을 두지 않고 '열린 논의'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