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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다시 봄,

서영처

겨우내 잠자지 않고 먹지 않았다 늙지도 않고 진공의 집에 보관되었다 겨우내 앓았다 아득한 곳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와 어슬렁거리며 무덤을 빠져나왔다 길가엔 봄까치꽃, 장다리, 사위질빵이 무성하고 도랑엔 콸콸 물이 흐르고 모스부호를 생성하는 모호한 햇살 속에서 내가 아닌 것 같은 나를 본다 헛간엔 지난해 피었다 사라진 환영들로 가득하고 벗어 놓은 그림자 엉기성기 기워 입고 나왔는데 어둠에 친한 눈을 찔러 대는 빛 목덜미에 칼집을 넣는다 왼쪽 가슴께로 파고드는 통증 자갈밭에 주저앉는다 돌멩이, 비닐봉지, 빈 병 같은 의혹들을 토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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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맞는 계절이 괜스레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맘때와 같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무렵에는 그런 서먹함이 더하다.
여태껏 수차례 봄을 맞았으면서도 봄은 늘 ‘다시’가 아니라 처음인 것만 같다.
겨우내 “무덤” 혹은 어떤 “공의 집”에 혼자 웅크려 있다 어느 날 누군가 불쑥 열어젖힌 문을 통해 어리둥절 바깥으로 한 발을 내민 듯이. 난해한 “햇살 속에서 내가 아닌 것 같은 나를” 보게도 된다.

겨울은 얼마나 지난했나. 추위를 피해 움츠리는 내내 몸도 마음도 아픈 날이 많았다.
스치듯 닿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얼음송곳이 되어 마음을 찌를 때도 있었다.
겨울이니까, 긴긴밤이니까 더 깊이 번민해야 했던 게 아닐까. 새 계절에는 “돌멩이, 비닐봉지, 빈 병 같은” 무겁고 갑갑한 것들을 좀 내려 놓아야겠다.
빛의 시간을 조심조심 돌보면서, 소박한 꽃들이 피어난 길가에 오래 머물러야겠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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