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안보 핵심 동력인 만큼
반도체산업의 가치 재정립 통해
급변하는 흐름 속 중심 잡아야
반도체라는 단어는 이미 일상생활 속의 단어가 되었다.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과 노트북 컴퓨터에는 수십 개의 반도체가 탑재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이 영위하는 산업 중 가장 부가가치가 큰 산업은 반도체 산업이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는 강대국 사이 패권 다툼의 중심이 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런 중요성에 공감하여 반도체를 공부하기 위해 반도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전기가 흐르는 물질인 도체와 전기가 흐르지 않는 물질인 부도체의 중간 성질을 띠는 물질’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설명이 등장한다.
이 설명은 전자제품 속 전지전능한 반도체의 모습과 전혀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물리학 지식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반도체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대체 반도체라는 단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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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성 작가 |
그래서 학자들은 작고 빠르면서도, 전력 소모는 낮고, 제조 비용도 낮은 신호 제어 소자를 지속적으로 찾아다녔다.
개별 소자가 저전력 고성능이라면, 이를 조합하여 만드는 완제품 컴퓨터 역시 저전력 고성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그 답을 반도체 물질에서 찾았다.
종류가 다른 두 반도체 물질을 접합한 뒤, 전원을 연결하면 저전력 고성능 신호 제어 소자를 제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노벨상 수상에 빛나는 제품이자, 수많은 매체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자주 거론되는 트랜지스터이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자, 세계 전자산업은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반도체와 전자산업의 관계도 여기서 시작된다.
전자산업이 원하는 소자의 핵심 재료였던 것이다.
트랜지스터 발명 이후, 또 한 번의 혁신이 일어난다.
기존 트랜지스터는 반도체 물질 덩어리를 가공해서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런 방법 대신 작은 트랜지스터들을 반도체 물질 표면에 새기는 방식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하게 된다.
실리콘이라는 물질은 조금의 가공만으로 반도체 물질로 바꿀 수 있으니, 실리콘 표면을 반도체 물질로 바꾼 뒤 표면에 매우 작은 트랜지스터를 새기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스펫(MOSFET)이다.
이 발명 덕분에 기존에 기판에 트랜지스터를 하나씩 납땜하여 만들어지던 전자제품들이 조그만 실리콘 조각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모스펫을 집적하여 만든 전자제품은 회로를 매우 작은 면적에 모았다는 의미로, 집적회로(IC)란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집적회로가 반도체라는 단어를 차지해 버리게 되었을 뿐이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집적회로 사업을 ‘반도체 사업’이라고 지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 사실들을 살펴보면, 우리에게 물리학적 의미의 반도체는 단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0과 1을 제어하는 소자를 매해 작게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중요한 것이다.
만약 반도체 물질 없이 0과 1을 제어하는 소자를 작고 값싸게 제조할 수 있다면, 집적회로라는 단어와 반도체라는 단어는 분리될 것이다.
결국 집적회로의 중요성을 공부해야 하는데 집적회로가 반도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니 배워야 할 대상의 혼동이 발생한 것이다.
반도체 물질은 물리학을 배워야 이해할 수 있지만, ‘매해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성능을 높일 수 있는 전자 소자’가 경제안보적으로 가지는 의의를 이해하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과학 지식은 요구하지 않는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지름길인 경우가 있다.
반도체라는 용어를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사전적 정의에서 출발하게 되면 우리가 정말 원하는 반도체의 특징, 반도체의 외교안보적 가치 등을 이해할 수 없다.
반면, 조금 과거로 돌아가 반도체라는 용어가 변화해 온 역사를 살펴보면 되레 산업의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기술 용어가 범람하고, 세계 패권이 크게 변하는 이때일수록, 천천히 멀리 돌아가는 우직지계를 사용해야 할 시기일 것이다.
정인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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