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작품·여우주연·각본·편집상
칸 황금종려상 이어 다시 쾌거
25세 매디슨 첫 女주연상 이변
‘브루탈…’ 브로디 남우주연상
22년 만에 두 번째 수상 영예
리사, K팝 가수 첫 축하공연도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가 아카데미 주요 5개 부문을 석권하며 시상식의 주인공이 됐다.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아노라’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을 싹쓸이했다.
6개 부문 후보로 올랐던 이 영화는 남우조연상만 빼고 5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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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거행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 5관왕을 차지한 영화 ‘아노라’의 션 베이커 감독이 작품·감독·각본·편집상 4개 부문 오스카상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연합뉴스 |
지난해 제77회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연출뿐 아니라 영화의 각본을 쓰고 편집까지 도맡은 베이커 감독은 네 차례나 수상 무대에 올랐다.
그는 “수년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삶의 경험을 공유해준 성노동자 커뮤니티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또 “극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웃고, 울고, 소리지르며 영화를 보는 건 요즘처럼 세상이 분열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시기에 어느 때보다 중요한 공동체 경험”이라며 “팬데믹 동안 미국에서만 1000개 스크리닝 사라졌는데, 이대로라면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잃게 될 것. 극장 관람이라는 위대한 전통을 계속 이어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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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연기상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남우주연상 에이드리언 브로디, 여우주연상 마이키 매디슨, 여우조연상 조 샐다나, 남우조연상 키에란 컬킨. 로스앤젤레스=EPA연합뉴스 |
20대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2017년 엠마 스톤(‘라라랜드’)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스타 탄생’을 예고한 매디슨은 성노동자 커뮤니티에 감사를 표하며 “LA에서 자랐지만 할리우드는 항상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 자리에 서 놀랍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영화 ‘서브스턴스’로 생애 첫 골든글로브를 받은 데 이어 크리틱스초이스, 미국배우조합상(SAG)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유력 수상 후보로 점쳐졌던 데미 무어는 오스카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남녀조연상은 예상대로 ‘리얼 페인’의 키에란 컬킨과 ‘에밀리아 페레즈’의 조 샐다나에게 각각 돌아갔다.
컬킨은 ‘나홀로 집에’ 시리즈로 잘 알려진 맥컬리 컬킨의 친동생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미국인으로 첫 아카데미를 품에 안은 샐다나는 “제 할머니가 1961년 이 나라로 오셨는데,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노래하고 연기해 상을 받았으니 정말 기뻐하실 것”이라며 “(도미니카 출신 미국인으로서) 첫 수상자이지만, 마지막은 아닐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시상식의 13개 후보로 최다 지명됐던 ‘에밀리아 페레즈’는 여우조연상과 주제가상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
한편 10개 부문에 후보를 올리며 ‘아노라’와 경합했던 ‘브루탈리스트’는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3개 부문을 수상했다.
2003년 ‘피아니스트’로 29세 나이에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22년 만에 트로피와 재회한 ‘브루탈리스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전쟁과 억압이 트라우마,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타자화를 남겼다”며 “과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증오를 방치하지 말라는 교훈. 더 건강하고 포용적인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활동가와 이스라엘 기자가 합작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현실을 담은 ‘노 아더 랜드’는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해 깊은 울림을 남겼다.
팔레스타인 출신 바셀 아드라 감독은 무대에 올라 “두 달 전 태어난 딸이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불의를 멈추고 팔레스타인 인종 학살 중단 위해 진지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수상소감을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올해 장편 애니메이션상은 인디 애니메이션 ‘플로우’에 돌아갔다.
‘인사이드 아웃 2’(픽사), ‘와일드 로봇’(드림웍스) 등 대형 스튜디오 작품을 제치고 트로피를 안은 라트비아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는 “이 수상이 전 세계 독립영화 제작자들에게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백희나 작가의 원작으로 바탕으로 한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 ‘알사탕’은 수상하지 못했다.
이번 시상식은 올해 1월 LA에서 보름 넘게 이어진 대형 산불과 수많은 피해자를 위로하는 뜻을 담아 예년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 치러졌다.
후보자 만찬 행사가 취소되고, 특별공연 무대는 축소됐다.
행사 중간에는 LA 소방관 10여명이 정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박수를 받았다.
진행을 맡은 코넌 오브라이언은 “끔찍한 산불과 분열적인 정치 상황에서도 영화의 마법과 광기, 웅장함, 기쁨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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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축하 공연에 나선 블랙핑크 리사가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 주제곡 '리브 앤 렛 다이(Live and Let Die)'를 부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
영국 첩보영화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 창작 통제권을 미국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최근 인수한 것과 관련해 007 메들리로 이어진 공연에서 리사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007 죽느냐 사느냐’의 주제가인 ‘리브 앤 렛 다이‘(Live and Let Die)를 불렀다.
리사에 이어 미국 팝스타 도자 캣, 영국 싱어송라이터 레이(RAYE)도 무대에 올라 ‘다이아몬즈 아 포에버’와 ‘스카이폴’을 열창했다.
공연이 끝난 뒤 세 가수가 함께 서서 인사하자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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