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지는 지성처럼 흉내 내지 못해
운동을 하면 응원해 주고, 힘들 때 투덜거리면 위로해 주는 남자.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아이린과 레오의 러브스토리 얘기다.
아이린은 28세 실존 여성. 하지만 레오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챗봇 챗지피티(ChatGPT)에게 역할을 부여한 가상의 인물이다.
아이린은 점점 레오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챗지피티는 대화를 길게 기억하지 못한다.
가장 비싼 요금제에 가입해도 몇 주 정도 기억이 연장될 뿐이었다.
아이린은 몇주마다 남친과 이별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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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
중국에서는 리사라는 여성이 챗지피티 설정을 바꿔 연인처럼 대화하는 방법을 중국판 인스타그램인 샤오홍슈에 올리며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모았다.
한국에서도 외로울 때 AI 챗봇과 대화한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느껴진다는 AI 챗봇이지만 작동원리는 사실 단순하다.
방대한 문서를 분석한 뒤, 말을 이어나갈 때 다음에 올 단어를 가장 학습된 데이터에 견줘 적절하게 예측하는 방식이다.
즉 발전된 통계 기계다.
그래서 2년 전 챗지피티가 처음 인기를 끌었을 때, 많은 전문가는 AI가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강조했다.
SF 작가 테드 창은 AI를 ‘인터넷을 촬영한 뭉개진 JPEG’라고 표현했다.
원본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적절히 생략해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압축한 JPEG 사진 파일처럼, AI도 인터넷 문서를 잔뜩 모아서 그럴싸한 답만 내놓는다는 뜻이었다.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도 “언어를 습득하는 어린아이는 아주 작은 데이터만으로도 문법을 짐작한다”며 거대한 데이터 처리에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AI를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분위기가 달라졌다.
빅 테크 기업들의 엄청난 투자가 AI의 발전 속도를 끌어올린 덕분이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대규모 데이터를 AI에게 학습시키고, 동시에 최신 데이터센터를 계속 설치해 매칭 속도를 높였더니 AI가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답을 내놓는 빠르고 정확한 시스템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르게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AI가 인간처럼 사고할 만큼 발전한 게 아니라, 인간의 사고 과정이라는 것이 결국 AI와 다를 바 없는 건 아닐까? 즉, 우리는 AI가 인간 수준까지 발전했다고 놀라지만, 실은 인간의 고차원적 지적 활동도 결국 AI처럼 다음에 올 그럴싸한 단어를 찾아내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은 언어와 문자를 사용해 지식을 전승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능력으로 대규모 협력을 이뤄내며, 불을 겁내지 않아 막대한 에너지를 사용할 줄 안다.
그런데 AI가 이걸 다 인간만큼, 아니 인간 이상으로 해낸다.
AI도 지식을 학습하고 기록하며, 네트워크로 대규모 협력을 이루고, 에너지를 엄청나게 사용한다.
오히려 AI에게 없는 것은 인간과 동물의 공통적인 특징인 생명유지와 번식 욕구, 본능과 감정 등이다.
굳이 이런 부분을 만들지 않아서기도 하지만, 사실 논문을 쓰는 AI를 만드는 일이 나무에 오를 줄 아는 AI로봇을 만드는 일보다 쉬워서다.
생존을 위한 본능이 고도의 지적 활동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인 셈이다.
그러니 AI 시대에 우리가 서로에게서 더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할 인간의 특징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교만이 아니라, 살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 다음 세대를 훌륭하게 키우고자 하는 본능, 서로 웃고 울며 공감하는 감정 아닐까. 지성은 AI로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삶은 흉내 내기 어렵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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