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을 두고 1년여간 의정갈등이 이어진 가운데 전공의들 현장 이탈과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 등으로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전남대 의대는 81년 만에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하는 등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으며, 지역 대학병원에서는 빈 전공의 자리를 채우며 버텨온 의료진들이 극심한 피로에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임시방편일 뿐 이후 증원 논의에서 또다시 정부가 끌려다니는 등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전남대·조선대 의대생 집단 휴학에 조촐한 졸업식
7일 지역 대학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의대생 집단 휴학으로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한 전남대 의대가 지난달 26일 예정했던 전기 학위수여식을 취소했다.
전남대는 지난해 의대 정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 국면에서 전국적인 동맹휴학에 나섰던 의대생 653명(재적 740명)이 휴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대 의대는 1944년 광주의학전문학교로 개교한 이후 81년 만에 처음으로 학생들의 집단 휴학 여파에 학위수여식을 열지 못했다.
조선대학교 의과대학은 지난달 19일 올해 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미니 학위수여식으로 대체했다.
조선대 의대는 지난해 재적생 750명 중 676명이 의대 정원 증원 반대 사유를 밝히며 휴학을 신청했다.
증원 전 조선대 의대 학생 수는 학년당 125명으로, 매년 120명 안팎의 졸업생을 배출해왔다.
◇ 신입생 수강신청도 미지근…일부 선배 압박도
최근 전남대와 조선대 의과대학 25학번 신입생 165명과 150명은 이탈 없이 모두 등록을 마치고 입학했다.
올해 전남대와 조선대 의대 신입생은 지난해보다 각각 38명, 25명 증원됐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기준 전남대 본과 1학년 학생 중 6명만이 수업을 신청했다.
조선대 신입생 일부는 아직 수업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두 대학은 오는 10일까지 수강신청 정정 기간을 운영, 휴학생들의 복학 신청을 받기로 했다.
일부 대학에선 신입생들에게 동맹휴학 참여를 압박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어 학교 차원의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조선대 의대는 지난달 '의대생들의 수업 방해 행위가 있다'는 내용의 투서를 받고 재학생들에게 주의 조처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투서에는 '비대위에서 의대 신입생들의 투쟁 참여 의향 설문조사를 진행하려 한다.
신분 확인과 중복참여 방지를 명분으로 실명 기재를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선대 의대는 학생들에게 "신입생 수업 방해 행위를 하지 말라"는 취지의 조처를 했다.
최근 전남대 익명 커뮤니티에는 '의대 25학번 투표'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은 의대생들의 등교 여부를 두고 투표를 진행했는데, 댓글로 찬반 의견이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게시글을 포함해 전남대로는 수업 방해 행위와 관련 제보·투서는 따로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전공의 장기 공백…대학병원 남은 의료진 번아웃 호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의 의사 수는 지난 2023년 814명 대비 지난해 451명으로 44.5% 급감했다.
두 병원은 전공의뿐만 아니라 전문의도 일부 이탈해 감소 폭이 더 컸다.
지난해 2월 19일부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 집단 사직한 전공의는 전남대병원 225명, 조선대병원 107명에 이른다.
각 병원은 남은 전문의와 일부 전임의·전공의, 간호사 등 진료 보조 인력으로 비상진료 체계를 운영하고 있지만, 인턴·레지던트는 일부를 충원하는 데 그치는 등 장기화된 인력난으로 남은 의료진의 피로 누적이 극심한 상황이다.
지난해 2월 병원을 떠난 전공의 대부분은 각 지역 대학병원의 올 상반기 추가 모집에도 복귀를 택하지 않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상반기 레지던트 256명을 모집하려 했지만, 지난달 25일 기준 지원은 1명에 그쳤다.
조선대병원도 인턴 정원 38명, 레지던트 1년차 47명 등을 모집했으나 지원은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대학병원은 올해 상반기 전공의 지원 인원과 충원율 등을 모두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진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를 포함해 신규 모집에도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전공의 채용은 상·하반기로 진행되기 때문에 수시 모집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 정부, '3월 의대생 복귀' 조건부 3,058명…갈등 봉합책 될까
이날 정부는 ‘이달 중 의대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2026학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2024년도 수준인 3,058명으로 되돌리자는 의대 총장들과 학장들의 건의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정부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의대 학장들과 대학 총장들이 최근 모든 의대생이 3월에 복귀해 2025학년도 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2026학년도에 한해 3,058명으로 대학장이 조정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했다"며 "정부는 3월말 학생 전원 복귀를 전제로 총장들의 자율적인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의대 정원을 되돌리기 위해선 우선 ‘의대생 전원 복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3월말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총장들께서 건의한 2026학년도 모집인원을 2024학년도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은 철회되고 입학정원은 5,058명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6학년도 의대 모집정원이 증원 전인 2024학년도 수준으로 되돌아가면 입시 지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전공의 단체와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는 의대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내에서도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하자고 정부에 제안하자'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었으나, 박단(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 의협 부회장 등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취재본부 민찬기 기자 coldai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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