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담당 기자가 지금,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날이겠지만 교사에겐 무서운 날이죠.” 경기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현장체험학습 얘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쉬었다.
현장체험학습은 아이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지만, 교사에겐 큰 부담이기도 하다.
혼자 20명 넘는 아이들을 인솔하다 보면 진이 빠지기 일쑤다.
특히 최근 현장체험학습 도중 발생한 사고에 교사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안전사고 문제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A씨는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라며 “교사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장체험학습 도중 초등학생이 교통사고로 숨진 사건에 대해 법원이 담임교사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현장체험학습에 대한 교사들의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교원단체들은 현장체험학습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 |
지난 2월 11일 강원 춘천지법 앞에서 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왼쪽 세번째)이 현장체험학습 사고와 관련해 교사에게 유죄를 판결한 재판부를 비판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
현장체험학습 갈등이 촉발된 것은 지난달 춘천지방법원의 판결이다.
8일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등에 따르면 2022년 11월 강원의 한 테마파크에서 현장체험학습 중이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졌다.
검찰은 “학생을 인솔했던 교사가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담임교사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1심 판결에서 과실이 존재한다고 보고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해당 판결은 교직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초등학교 교사 B씨는 “교사가 기소된 것 자체로도 놀랐는데 실제 과실이 인정돼 충격받았다”며 “교사 입장에선 현장체험학습이 꺼려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동안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기소된 교사의 무죄 판결을 촉구해왔던 교원단체들은 일제히 재판 결과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교사노조는 “고인과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한다”면서도 “인솔교사에게 과중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판결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교사노조는 “그동안 현장체험학습 관련 사건·사고가 계속 이어졌다.
학생과 교사의 안전을 보장할 대책을 요구해왔으나 진전이 없다”며 “이제 현장체험학습은 학교 현장에 공포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처럼 학생의 안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인솔교사에게 돌리고자 한다면 현장체험학습 지속 여부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교사들에게 위임해야 할 것”이라며 “학생과 교사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현장체험학습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예측 불가능하고 고의성이 없음에도 교사에게 형사적 책임을 물은 판결에 깊은 유감”이라며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안전 점검과 조치에 최선을 다한 교사들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의 책임만을 묻는 것은 가혹하다.
교사 한 명이 수십명 학생을 인솔하면서 수많은 변수와 돌발 상황까지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교총은 “유죄 판결이 확정된다면 앞으로 어느 교사가 현장체험학습을 가려고 할 것이며, 어떤 학교장이 후배 교사들에게 현장체험학습을 가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법과 제도, 판결이 현장체험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현장체험학습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사들 “안전대책 없는 체험학습 반대”
교사들 사이에서는 현장체험학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교사노조가 최근 초중고 교사 9692명을 조사한 결과 ‘현장체험학습 시 교사와 학생 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비율은 96.4%에 달했다.
올해 현장체험학습을 전면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81%였다.
올해 현장체험학습을 1회 이상 시행하는 학교는 70%였으나 이 중 67%는 현장체험학습 추진 과정에서 교사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고 답했다.
교사노조는 “교사들이 안전상의 문제로 현장체험학습 추진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학교 현장에서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교사노조 조사 결과 올해 현장체험학습을 가지 않기로 결정한 학교는 전체 학교의 10% 수준이지만, 교원단체들이 연일 현장체험학습 중단·폐지를 요구하는 성명 등을 쏟아내고 있어서 실제 현장체험학습을 가지 않는 학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울산초등교장협의회에 따르면 최근 울산지역 초등학교 121곳 중 102곳을 조사한 결과 60%가 넘는 학교(63곳)가 “학교안전법 개정 전까지 현장체험학습을 보류하겠다”고 답했다.
현장체험학습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곳은 6%(6곳)에 불과했다.
일부 학교에선 이미 봄 소풍 실시 여부를 두고 학교와 교사가 갈등을 빚는 분위기도 포착되고 있다.
◆학교안전법, 대안 될까
교육 당국은 학교안전법 개정 등이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6월 개정 시행 예정인 학교안전법에는 학교 밖 교육활동 시 안전요원 배치를 의무화하고, 고의나 중과실이 없고 법에 따른 안전 조치를 이행한 경우에는 교사와 학교가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교사들은 개정 학교안전법만으론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충남교사노조가 최근 도내 교사 299명에게 학교안전법 개정안이 현장체험학습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인지 조사한 결과 87%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충남교사노조는 “법 개정만으로는 현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현장체험학습 관련 안전 매뉴얼 법제화와 체험학습 인솔 시 법적 면책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충북교사노조도 개정안에 대해 “교사가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안전 조치의 기준에 대한 모호함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교육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찾아오는 체험학습’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이 직접 주관하는 체험활동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본 콘텐츠의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세계일보(www.segye.com)에 있으며, 뽐뿌는 제휴를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