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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대포와 성곽

대포의 등장으로 성곽도 진화
잘 깨지는 석재 대신 흙·벽돌로
낮고 두껍게 쌓아 충격 최소화
정조 때 만든 수원 화성 대표적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을 넘어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앞으로 예상되는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에 대비해 자국의 군사력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신속히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뜻하지 않게 한국 무기가 주목받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무기는 ‘K9 자주포’다.
작년 말 기준 ‘K9 자주포’가 세계 자주포 시장의 52%를 석권했다.
2000년 튀르키예가 최초로 ‘K9 자주포’를 도입한 이래 인도, 호주, 이집트, 폴란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루마니아가 도입했거나 도입을 확정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도 공산 국가로는 최초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무기를 구입하는 입장에서 고려하는 사항 중 하나는 ‘실전 경험’이다.
전장에서 그 성능이 입증된 무기라면 그보다 든든한 ‘보증수표’가 없기 때문이다.
‘K9 자주포’는 2010년 11월23일 북한이 도발한 ‘연평도 포격전’에서 신속한 대응 사격과 정확하고 강력한 위력으로 북한군에게 큰 피해를 안김으로써 그 성능을 과시한 바 있다.
이 불행한 사건으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K9 자주포’의 성능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기 수출 측면만 두고 보면 연평도 포격전이 ‘새옹지마’가 된 셈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과거를 되돌아보면, 또 하나의 역사적 사건은 1871년 6월10일 미국이 강화도에 침략한 ‘신미양요’다.
미국은 조선과의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하며 함포 85문을 장착한 군함 5척에 1230명의 병력을 태워 강화도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하다가 조선이 이를 무시하자 6월10일 초지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함상 함포 사격으로 초지진을 완전히 초토화한 뒤 별다른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상륙하였다.

마지막 광성보전투에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결사 항전하였으나, 장군을 포함한 조선군 350여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조선군은 거의 전멸 수준이었으나 미군은 3명 전사에 그쳤다.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는 엄청난 무력 차이에 있었다.
조선군이 사용한 홍이포와 불량기포 등 구식 대포는 사거리가 짧고, 한 번 발사 후 포탄을 재장전하는 시간이 길었으며, 정확도가 떨어졌다.
설사 명중하더라도 그 위력이 약했다.
이에 비해, 미군이 사용한 달그런포와 파롭포는 현대의 대포처럼 포신 내에 강선이 있어 사거리가 길고 정확할 뿐 아니라 조선 화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력이 강력했다.
이에 더해, 미군이 가졌던 개틀린건은 분당 400발까지 발사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기관총이어서 광성보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7년, 나는 신미양요 때 빼앗긴 어재윤 장군의 ‘수자기(帥字旗)’ 장기 대여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미국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수자기와 함께 신미양요 때 미군에 빼앗긴 조선의 ‘불량기포’와 미군이 당시 사용한 함포를 구경할 수 있었다.
불량기포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출입문 양편에 마치 야외 조형물인 양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크기가 꼭 요즘의 ‘야구방망이’만 했다.
이에 비해, 미군의 함포는 웬만한 집채 크기여서 신미양요 당시 양측의 무력 차이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대포의 발전은 전통적인 방어 시설인 성곽의 진화와 방어 전략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초기 성곽은 보병과 기병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 시설이었지만, 대포가 전장에 등장하고 그 위력이 점차 증대함에 따라 성곽은 더 이상 예전처럼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 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서양에서는 포탄의 충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높은 성곽을 낮추는 대신 두껍게 만들고, 깨지기 쉬운 석재를 대신해 포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흙과 벽돌로 성벽을 보강했다.

성곽의 발전 단계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다루기 쉬운 흙으로 높은 둔덕을 쌓아 ‘토성’을 만들었다가 이를 점차 돌로 대체한 ‘석성’으로 진화했는데, 대포의 등장으로 원래의 토성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돌은 강한 충격에 유리처럼 깨지는 성질이 있어 포탄을 맞으면 성벽 돌이 깨지면서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흙은 마치 스펀지와 같아서 포탄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해 그 충격이 주변으로 전달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벽돌로 만든 성곽 역시 포탄의 운동에너지를 흡수하는 성질이 석재에 비해 매우 크다.
조선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대포에 대비해 성곽을 개량할 필요성을 절감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조 때 건설된 수원 화성이다.
화성은 성벽에 그전까지는 사용하지 않았던 벽돌을 석재와 함께 사용해 대포의 공격에 대비하고 요소요소에 ‘포루’라 불린 서양식 포대를 설치해 적의 공격을 분쇄하도록 계획했다.

대포의 정확도와 위력이 증가하고 성곽을 넘어 성내를 타격할 수 있는 곡사포의 등장으로 성곽은 전통적인 방어용 군사 시설의 지위를 잃었다.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 전역에 만들어진 산성과 더불어 서울의 한양도성을 비롯해 경기도 수원의 화성, 충남 서산의 해미읍성, 울산시 울주의 언양읍성, 전남 순천의 낙양읍성 등 현재 우리가 구경할 수 있는 성곽은 그 역할을 다한 채 문화유산으로써 과거의 흔적만 보여줄 뿐이다.

1871년 집채만 한 미군의 함포에 맞서 야구방망이만 한 불량기포로 맞섰던 조선의 후계자인 대한민국이 이제 ‘K9 자주포’로 세계 무기 시장에서 우뚝 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곽의 나라 조선이 대포의 나라 대한민국이 된 셈이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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