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관측 뚫고 최종 4곳 포함 확정
지역사회 적극 유치전 참여 ‘열매’
증일동 일대… 2030년 3월 개교 목표
SK하이닉스 본사 등 지역 기업 연계
미래인재 육성·중첩규제 보상 기대
“수십년간 이어온 중첩규제로 4년제 대학은 없고, 교육시설과 프로그램 역시 부족해 우수 학생들은 중학교부터 대도시로 발길을 돌립니다.
”
경기 이천시에 사는 학부모 김모(54)씨는 볼멘소리부터 늘어놨다.
40여년간 이천에 살았다는 그는 이천을 비롯한 경기 동부 지역 시·군들이 여전히 양질의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도농복합도시를 둘러싼 지역 불균형이 교육 불균형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김씨는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김씨는 “최근 과학고 유치가 확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이 있는 이천이 교육도시로 발돋움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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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과학고 유치 축하행사. |
‘교육 불모지’로 불리던 경기 동부 지역에 들어서는 첫 과학고로 교육 불균형 해소와 중첩규제 보상, 반도체 인재 육성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이천시에 따르면 교육부는 최근 이천시와 성남시, 부천시, 시흥시 4곳에 경기형 과학고를 신규 지정하는 데 동의했다.
이로써 지난해 4월 경기도교육청이 과학고 신규 지정을 선언하며 1년 가까이 이어온 유치전도 막을 내렸다.
이번 유치전에는 도내 31개 시·군의 3분의 1이 넘는 12개 시·군이 뛰어들었다.
인구 100만 안팎 도내 대도시 대부분이 경쟁에 나서며 비교적 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이천은 부지나 예산 확보 측면에서 열세인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비등했다.
◆‘교육 불모지’에서 ‘과학 인재 요람’으로
하지만 유치전 중반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인구수와 예산에서 밀릴 것이라던 인구 22만의 이천이 반도체 인재 양성 카드를 끄집어내면서다.
SK하이닉스 본사와 연구소, 한국세라믹기술원 등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핵심 시설을 갖춘 이천은 과학고를 통해 지역 발전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교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고 유치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시는 무엇보다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전무한 경기 동부권의 교육 불균형 해소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이천시는 김경희 시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송석준 국회의원과 도·시의원, 사회단체, 지역주민 역시 유치전에 나섰다.
지난해 7월 고등학교 교장단 간담회, 교육지원청 협의 등을 시작으로 유치위원회와 실무추진단을 구성하고 설문조사, 서명운동, 릴레이 응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냈다.
유치위와 추진단에는 시 관계자를 비롯해 시의회, 교육지원청, 교육 전문가, 반도체 연구원, 학부모, 주민대표 등이 참여해 산·학·연 연계 추진 방안을 두고 머리를 맞댔다.
지난해 8월에는 정책토론회를 열어 공감대를 형성했고, 9월에는 1000여명이 참석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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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의 젊은 기업인 모임에 참여한 회원사들은 과학고 유치 범시민 기금모금과 함께 과학고 유치를 위한 캠페인에 나섰다.
연구시설과 인력을 보유한 지역 기업 12곳은 인재 양성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동참하기로 하고, 연구시설 이용에 동의했다.
일부 기업은 시와 과학 인재 양성 협약을 교환했다.
인근 광주·여주·하남·양평의 시·군 단체장과 정치인들도 이천의 과학고 유치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이천시는 성남·시흥·부천시와 함께 경기형 과학고 1단계 예비 지정을 통과했다.
이어 올해 1월 경기도교육청의 특목고 지정·운영위 심의를 거쳐 지난달 28일 마지막 관문인 교육부 장관 동의를 받아 유치를 확정했다.
이천과학고(가칭)는 2030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한다.
증일동 일대에 3만3138㎡ 규모로 설립될 예정이다.
증일동 일대는 자연녹지지역으로,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주변에 유해시설이 없다.
쾌적하고 안전한 학습환경 제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규모는 전국 과학고 평균 부지 면적을 훌쩍 뛰어넘는 데다 인근에 중리택지지구와 이천시 행정타운이 있어 생활 편의성이 높다.
시는 타당성 조사, 중기지방재정계획 수립, 도시관리계획 결정, 토지수용 등 행정 절차를 거쳐 2028년 본격적인 건립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반도체 인재 양성… 과학교육 판도 바꾸나
지역 특색을 살린 반도체 중심 과학 인재 양성을 강조한 이천과학고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우선 SK하이닉스 본사를 포함한 반도체 산업중심지로서 학생들에게 현장 경험을 통해 미래산업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미리 습득할 수 있는 실무형 교육이 가능하다.
경기 동부권에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미래형 스마트교육 인프라도 구축할 수 있다.
지역사회와 교육의 상생발전, 사통팔달의 교통망 등 지리적 이점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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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기숙사와 생활환경지원, 교육혁신을 위한 교사 연수, 장학제도 및 교육지원 사업도 제안했다.
아울러 인근 반도체·방산기업, 연구원과 협력해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연구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와 학교, 교육지원청, 기관 등이 참여하는 상시 교육과정 위원회가 꾸려져 지역주민과 소통 창구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천과학고는 향후 대한민국 과학교육의 판도를 바꿀 실험 기회이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최근 간담회에서 도내에 과학고 입시 열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학원을 거쳐야 경기형 과학고에 입학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 이번 정책은 실패”라고 규정했다.
학생 선발부터 교과 과정까지 ‘미래형’ 과학고로 변화를 주기 위해 지식 테스트하듯이 학생 선발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이천과학고를 비롯한 경기형 과학고들이 특정 분야의 맞춤형 교육에 집중하도록 기존 과학고에서 필수였던 이과 과목들의 수를 줄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예컨대 현행 과학고에선 교과 과정의 50%를 과학 분야 과목으로 채워야 하지만 경기형 과학고에선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이 모두 필수과목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
학생들이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교육을 받도록 교육과정 개선이 이뤄진다는 설명이다.
이천시 관계자는 “영재학교를 넘어 미래산업을 이끌 실전형 인재 양성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며 “과학고가 지역의 연구·산업 생태계를 키울 수 있는 인재 육성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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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형 과학고등학교 유치를 이천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습니다.
”
김경희(사진) 경기 이천시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래도시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경기형 과학고 유치를 첫손에 꼽았다.
기존 ‘반도체 도시’에 ‘미래 교육도시’라는 비전을 더한 것이다.
김 시장은 신년사에서 “(2025년을) 한계를 넘어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뜻하는 해로 삼겠다”며 “새해, 우리가 마주할 첫 번째 기쁨은 과학고 유치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시장의 공언은 최근 현실이 됐다.
김 시장은 17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천시가 경기형 과학고를 유치한 것과 관련해 “시민 모두 하나 되어 유치한 이천과학고는 시가 대한민국의 첨단·과학 인재 양성의 중심도시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행정안전부(옛 내무부) 최초의 비고시 여성사무관 출신인 김 시장은 두 딸을 키우며 누구보다 교육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세 손주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교육 문제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김 시장이 그리는 가까운 미래 이천시의 모습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다.
반도체 특화 교육과 SK하이닉스 등 산·학·연 협력을 통해 과학교육 도시를 육성하고, 향후 반도체산업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방위산업까지 연계하는 경쟁력 있는 미래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김 시장은 “이천시는 SK하이닉스와 한국세라믹기술원이 있는 첨단산업 ‘K반도체 벨트’의 중심지로 첨단기술과 협력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과학고 유치로 지역 교육 환경 개선과 함께 미래 인재 양성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김 시장은 “관내 초·중·고교 간 협력 프로그램과 시민 과학교실과 같은 지역 협력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모든 학생이 과학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세심한 준비로 학생들이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2030년 과학고 개교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차세대 과학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천=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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