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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서울의 밤’ 지나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계엄사태 이후’ 담은 문예지들
계엄 선포∼법원 난동 생생하게 기록
정치 논리·사회 분열 판치는 현실 고발
K팝 응원봉 들고 집회 나온 2030 여성
아이돌 팬덤과 정치적 감정 ‘고리’ 주목
초월적 사태 앞에서 느낀 무력감·분노
‘그날’ 이후 글쓰기 어려움 토로하기도


12·3 비상계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무엇이 될 것이며,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계엄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혼란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휘발과 왜곡에 취약한 기억을 엮어 사회적 기억으로 남기려는 예술의 시도는 이미 시작됐다.
계간 문예지들의 2025년 봄호는 일제히 계엄과 탄핵으로 채워졌다.
적반하장·회피의 정치 논리와 극단적 사회 분열, 음모론이 판치는 가운데 여러 문예지 봄호 특집에는 계엄의 충격파를 기록하고 광장에서 마주한 연대의 가능성을 되새기는 한편, 남은 과제가 무엇일지 헤아려보는 글이 잇따라 실렸다.
왼쪽부터 계간 문예지 ‘문학과사회’ 별책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5년 봄호, 창비 계간 문예지 ‘창작과비평’ 207호, 계간 문학동네 122호.
◆“계엄의 밤, 나는…”

문학과지성사는 지난 7일 발행한 계간 문예지 ‘문학과사회’ 별책 ‘문학과사회 하이픈’ 2025년 봄호 주제를 ‘탄핵-일지’로 설정했다.
작가와 평론가 등 15명이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3일부터 1월 말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의 서울 서부지방법원 난동 사태 즈음까지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겼다.

증언들은 황당하고 두려웠던 그 밤을 지나 약 두 달간 겪은 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붙잡으려 시도한다.
소설가 김이설은 ‘2024년 12월, 2025년 1월의 메모’라는 제목의 글에서 “(계엄이 선포된 직후) 진정제를 두 개나 먹었는데도 눈물이 질금질금 흘렀다.
(…) 새벽 1시가 넘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다행한 일이었는데 석연치 않다.
농락당한 느낌이었다.
모멸감이 몰려오고 수치스러웠다”고 썼다.
서부지법 사태에 관해서는 “혐오를 혐오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저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않는데 우리에게는 저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대화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필요한 걸까.”라고 적었다.

소설가 이미상은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 기일에 참석한 1월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노인이 ‘어깨빵’을 하고 지나가자, 자동 반사적으로 ‘저 인간도 태극기겠지’하는 지레짐작을 하고 분노가 치솟았던 경험을 회고한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여파였다.
테러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목표이기에 테러에 대항하려면 내면의 공포를 이겨야 하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분노를 키워 분노로 불안을 밀어내야 한다.
(…) 그것이 윤석열이 기어코 해낸 일, 분열이 우리의 생활에 깊이 뿌리박혀 하는 짓이다.


◆응원봉 든 여성들은 누구인가

지난 1일 발행된 창비 계간 문예지 ‘창작과비평’ 207호 ‘K민주주의의 약진’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정치사에 새로운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백민정 창작과비평 편집위원(가톨릭대 철학과 교수)은 “내란 폭력의 깊은 어둠을 뒤로하고 촛불혁명의 재출발에 동참했다”며 “이른바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불리는 유럽마저 심각한 정치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 시민의 자기규율과 민주적 연대의 노력은 날로 빛을 더한다”고 말한다.

‘연대로 확장된 광장과 민주주의’에 대해 기고한 젠더 연구자 김소라는 특히 2030(20∼30대) 여성의 활약상을 조명했다.
그는 “절망과 분노를 자아내는 상황에서도 희망과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하는 힘은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즉시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의 용기,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기발한 문구의 깃발을 들고 광장에서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연대의식이었다”며 “2030 여성들은 탄핵촉구 집회에 대거 참여하며 집회의 풍경을 변화시켰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 많은 언론은 계엄 이후 탄핵 집회 모습을 두고 집회 문화를 이끄는 주축이 2030 여성이었다는 점, K팝이 구호의 반주로 사용되고, 콘서트 응원봉 같은 소품이 시위 현장을 채웠다는 점을 조명했다.

그러나 K팝 팬덤의 당사자는 응원봉 문화를 정치와 엮는 게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일갈한다.
14일 발행된 계간 문학동네 122호에 실린 소설가(아이돌그룹 NCT의 팬) 이희주가 그 당사자이다.
이희주는 계엄 후 맞은 첫 토요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응원봉을 들고나온 이유’를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정치와 팬질이라는 두 가지를 억지로 접붙이는 듯한 기분에 머쓱함을 떨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왜 응원봉을 들고 나왔는지 스스로도 답할 수 없었고, 좋아서 한 팬질을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훈련으로 포장하는 것 같다는 반발심도 들었다.

오랜 자기관찰 끝에 작가는 아이돌 가수에 대한 자신의 사적인 감정이 정치적 감정 그 자체였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가 응원봉을 든 건 지독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날로 돌아가 다시 기자를 만난다면 그는 이렇게 답했으리라. “이 응원봉을 든 건 NCT WISH 응원봉이기 때문이에요. 거기엔 제가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고, 저는 걔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나온 거거든요.”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선 여성들의 내부도 결코 균질하지 않다.
소설가 황정은은 ‘日記’(일기)라는 제목으로 문학과사회 하이픈에 기고한 글을 통해 광장에서 겪은 서늘한 일화를 들려준다.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있던 날, 작가 옆자리에서 “탄핵하라, 그것만 하자고!”를 외치던 한 여성이 작가에게 말린 망고와 따뜻한 차를 건넸다.
온정을 나누던 여성은 연단에 선 활동가가 페미니즘과 성소수자를 주제로 발언하자 ‘여기서 저런 얘기를 왜 하느냐’고 목소리 높여 화를 낸다.
작가가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여기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고,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하자 여성은 무뚝뚝한 얼굴로 작가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계엄 이후의 글쓰기

계엄 이후 겪은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이들도 있다.
시인 송희지는 문학과사회 하이픈에 쓴 ‘계속 쓰기’에서 지난 12∼1월 산문도, 시와 희곡도 한마디도 쓰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무력함, 분노, 공허함, 염려 등의 감정에 휩싸인 그를 버티게 한 건 연대와 타인의 선의였다.
당연하게 믿어왔던 가치들이 훼손되는 초월적 사태 앞에서 설령 때때로 문학이 무력하게 느껴질지라도 섣불리 무기력해지거나 문학의 힘을 간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에게 쓰기의 동력을 주는 건 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존재다.
“나는 쓸 것이다.
계속.”

조해진에게 계엄 이후의 광장은 “우리가 서로에게서 길을 찾고 발견하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 우리 삶의 일부였다는 것”을 일깨운 공간이다.
서울 여의도, 한남동, 남태령에서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시작하면 유쾌한 환호로 호응하던 이들의 말과 행동, 연대야말로 문학 그 자체라고 그는 말한다.
한강 작가가 던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아들고 조해진은 이리 말한다.

“어느 날은 시위대 사이에 앉아 하나같이 반짝이는 응원봉을 오래 구경했다.
(…)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제 한몸 지키는 것에만 몰두해 있는 한때의 대통령에게, 여전히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치인과 반공이라는 껍데기 신념에 갇힌 이들에게. 조심하시라, 그 빛은 양심을 알았던 과거의 죽은 자들에게서 왔으니까. 현재를 가로질러 미래까지 구하게 될 테니까.”(‘문학동네’ 122호, ‘2024(내)란중일기’)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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