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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정 원장 “말에게 힐링받은 성장기… 말을 돕는 삶 꿈꿔 수의사 됐죠” [마이 라이프]

김다정 이퀴피스말동물병원 원장
13세에 첫만남 완전히 빠져
가족과 중국 여행서 말·낙타 봐
진로 정한 뒤 한국마사고 진학
트레이너 꿈꾸다 진로 변경해
국내 3명뿐인 말 전문 女 수의사
새벽 4시부터 농장 회진 등 업무
발목·다리 골절은 말에 치명상
반려·생업용 따라 진료 달라져
편안함 느끼는 진료 목표
말+평화 조합 병원이름으로
보호자 상황까지도 고려 중요
말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


“힘 좋다는 말도 감기에 걸려요. 열나고 기침하며 콧물을 흘리죠. 증세가 경미할 땐 키우는 농가에서 말옷을 입히고 담요를 덮어줍니다.
대개 병이 커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주사 한 방을 놓지만….”

김다정 이퀴피스말동물병원장은 어릴 때부터 말에게서 힐링을 누리고 인생의 진로를 일찍 결정한 만큼 제주의 경주마와 망아지, 승용마들이 아프지 않고 더 오래 행복할 수 있도록 가까이서 살피겠다고 말한다.
서부영화를 보면 말은 주인공을 태우고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겁 없이 건너는가 하면 폭우도 거뜬히 이겨내며 드넓은 황야를 반나절이나 질주하고도 늠름한 자태를 유지한다.
‘말은 잘 때도 서서 잔다’는 말이 있을 만큼 튼튼한 동물의 대명사. 그런데, 그깟 감기에 걸린다니 이게 뭔 소린지….

“발굽에 멍이 드는 경우가 가장 흔해요. 돌이나 뾰족한 것을 밟아서…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래요. 우습죠. 다리 인대가 늘어나거나 나뭇가지 등에 긁혀 피부가 찢어지는 외상을 입기도 하고, 종종 복통을 일으키는데 장이 좁아지는 구간에서 장이 꼬여 제 위치를 벗어나 있기도 해요. 장기가 크다 보니 생명에 위협이 되기도 합니다.
산통을 겪다 죽는 경우도 있고요. 크고 늘씬한 경주마는 오로지 더 빨리 뛸 수 있도록 개량해온 탓에 의외로 병에 약해요. 이에 비해 몸집이 작은 천연기념물 제주말은 잔병 없이 엄청 건강합니다.
제주말만 있다면 수의사들 굶어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김다정(31) 이퀴피스말동물병원 원장은 제주도에 15명가량을 포함해 국내 100명도 안 되는 말 전문 수의사다.
특히 대형 동물인 말을 살피는 여성 개원 수의사는 국내 3명뿐이다.
제주시 조천읍에 자리한 카페말로에서 그를 만났다.
경주마 서러브레드종과 제주말, 포니, 알파카 등이 사는 목장을 겸한 제주 명소다.

새벽 4시면 그의 업무가 시작된다.
농장과 목장이 주로 이른 새벽에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이 1년 중 가장 바쁜 때입니다.
망아지들이 태어나는 시기거든요. 장일성(長日性) 동물인 말은 해가 긴 2∼6월이 번식기예요. 임신기간이 330일인 암말의 교배시기를 정해주는 등 반복되는 업무는 주로 새벽에 처리하고, 나머지 시간은 농장을 돌아보며 회진합니다.


말에게 치명적인 부상은 발목이나 다리 골절이다.
체구가 커서 잘 붙지도 않고 움직임이 많아 재활하기가 어렵다.
붙어도 바르게 걷거나 뛸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일쑤여서다.

“반려로 키우는 경우와 생업용으로 기르는 말에 대한 진료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반려용의 경우 골절되더라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생업용은 골절되면 더 이상 기를 이유가 없어집니다.
사육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므로 어쩔 수 없어요. 보호자 입장도 고려해야죠. 설령 살려놓더라도 말이 말답게 사는 게 아니라면 고통만 배가시키는 셈이니깐. 마취해 재우고 안락사용 약물을 주사합니다.
잠든 상태에서 죽는 거죠. 귀에 대고 ‘고생했다’고 말해줍니다.
보낼 때는 편히 보내줘야 해요.”

경주용 말들은 건강상태가 양호한데도 성적부진 탓에 그냥 퇴역당하기도 한다.
1등만 알아주는 불쌍한 마생이다.
퇴역마들은 산에 방치되어 굶어 죽는 경우도 있다.
이 또한 비싼 비용 탓이다.

“반면 여러 번 수술받은 경주마일지라도 퇴역 후 다행히 승마용으로 전환돼 목장 승마장에 배치된 말들도 꽤 있어요.”

갑자기 인근 목장에서 김 원장을 급히 찾는 전화가 울렸다.
재빨리 짐을 챙겨 그를 따라나섰다.
대형 동물 수의사들은 직업 특성상 대부분 병원보다 현장에서 진료한다.
그의 승용차 뒷자리는 약품으로 가득하다.
뒤 트렁크를 열면 항생제와 소염제, 진정제, 외상처치약 등을 담은 사각형 상자들이 서랍식으로 설치돼 있다.
앰뷸런스처럼 기동성을 갖춘 이동병원이다.

“밤에도 출동해야 해요. 대개 목장에서 자체 처치하는데, 전화로 저를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위중하다는 상황일 테니 바로 달려갑니다.


도착한 목장의 말 축사에는 어미 말 옆에 배가 둥글게 부른 망아지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변비예요. 망아지는 태어나면 똥부터 누어야 하는데, 수망아지는 골반이 좁아서 가끔 용변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오늘 아침 태어났는데 배에 가스가 차니 고통 때문에 어미 젖을 빨지 않고 탈수증세까지 함께 보이는 거죠.”

의료용 장갑을 낀 김 원장이 망아지의 항문에 손을 쑥 능숙하게 넣는다.
도착하기 전 전화로 조치한 관장약 투약과 진통제 처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망아지는 50㎏ 몸무게에 1m 크기로 세상에 나왔다.
신생망아지의 정상체온은 38.3∼39.3도. 진료를 받는 망아지는 37도로 저체온증이다.
긴 목의 경정맥을 찾아 링거부터 주사한다.
몸부림 때문에 바늘이 빠지지 않도록 강력접착제로 링거줄을 망아지 목 털에 부착한다.
목 털이야 나중에 깨끗이 밀면 그만이다.
현장에서 활용하는 요령이다.

망아지는 8개월 동안 어미 말과 함께 지내지만, 목장에서는 대개 6개월이 지나면 젖을 떼고 분리시킨다.

망아지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두루 갖춘 수액을 가져오기 위해 다시 병원을 다녀온 사이, 다행히 비틀거리며 일어난 망아지가 어미 젖을 찾는다.
배 속의 가스도 제법 빠진 모습이다.

“먹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스스로 기운을 차리려 하니 좋은 신호예요. 건강하게 잘 자라날 겁니다.


김 원장이 말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중국 네이멍구 지역으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말과 낙타를 타 본 것이다.

“낙타보다는 말을 타는 느낌이 훨씬 더 좋았어요. 당시 살던 경주에 승마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를 졸랐죠. 방과 후 승마장 가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은 그는 인생의 진로를 빨리 정했다.
전북 장수에 있는 한국마사고로 진학해 승마 교과목을 들으며 마방을 치우고 마구를 관리했다.
한 학년이 40명. 전원 기숙사 생활. 교내 50여 마리의 말을 학생 2명이 1마리씩 맡아 돌보았다.
행복한 고교생활을 보냈다고 자평한다.
학교에서는 기증받은 퇴역 경주마를 승용마로 전환시켜 수업하므로 질주본능부터 잠재워야 했다.
원래 능숙한 트레이너를 꿈꿨으나 쉽지 않았다.

“말에게서 힐링을 누렸기 때문에 말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입니다.


대학 진학 후 비교해부학 등 동물에 대해 다양하게 공부했다.
되도록 실습을 많이 다녔다.

“실로 다양한 동물을 다뤄봤지만 말이랑 같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경마장 주변 말병원을 찾아가 일하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경주마의 80%가 태어나 자랍니다.
2020년 두 달간 실습을 위해 제주에 왔다가 그대로 정착하게 되었죠.”

5년 제주살이에 아는 이들이 부쩍 늘고 고교 선후배들과 말동호회 등 네트워크가 제법 형성되면서 뭍에 대한 그리움이 해소됐다.
지난해 10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병원을 개업했다.
말(Equi)과 평화(Peace) 두 단어를 조합해 문패를 달았다.
이퀴피스말동물병원. 말이 편안함을 느끼는 진료를 하겠다는 뜻이다.

‘말 개체의 건강상태뿐 아니라, 말이 처한 환경과 보호자의 상황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정확한 진단과 처치는 물론, 말이 스트레스를 덜 받고 편안하게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제 진료의 목표입니다.


그가 적어둔 초심이다.

김 원장은 말과의 만남에서 개업 말전문수의사가 되기까지 에세이와 경주퇴역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말에게 건네는 다정한 손길’(가제)을 5월 중 펴낼 예정이다.

김다정은…

●1994년 대구 출생 ●초등 6학년 승마 시작 ●한국마사고 ●국립경상대 수의학과 ●대한승마협회 수의위원 ●이퀴피스말동물병원 원장

제주=글·사진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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