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홀릭] 2차 전기 배터리 현상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말로 ‘캐즘’이 있다. 캐즘은 원래 지질학 용어로 지층에 균열이 생기면서 단절되는 것을 뜻한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 박사가 1991년 스타트업 성장 과정을 캐즘에 빗대 설명하면서 경제 · 경영 용어가 됐다. 이후 캐즘(Chasm)이란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개발돼 대중들에게 소개된 뒤에 대중화되기까지 수요가 후퇴하거나 정체되는 현상을 뜻하게 됐다.

글로벌 2차전지 시장이 요즘 캐즘에 들어섰다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주춤해지면서 동종업계가 어려움에 빠진 것이다. 워낙 내수 시장 기반이 넓고 전기차가 대세가 되어버린 중국 말고는 대체로 배터리 캐즘에 빠져 있다.

이런 정체 상황속에서 삼성SDI(대표이사 사장 최윤호)는 홀로 두 자릿수 성장세를 구가하는 한편 인력 확충과 투자 확충에 나서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

상반기 두자릿수 성장율-트렌드보단 실리 중시

동종업계 특히 국내 2차전지 업계는 최근 계속 해서 숨고르기를 하는 상황이다.

올 상반기 국내 배터리 3사의 전기차용 배터리의 시장 점유율이 전년 동기 대비 3.0%포인트 하락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삼성SDI만 나홀로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선두에 나선 중국 기업들 CATL 등을 제외하면 유일한 2차전지 기업이다,

글로벌 1위 중국의 CATL은 전년 동기 대비 29.5%(137.7GWh) 성장률로 1위 자리를 견고히 유지했다. 중국 내수 뿐만 아니라 테슬라 모델 3/Y, BMW iX, 메르세데스(Mercedes) EQ 시리즈, 폭스바겐 ID 시리즈 등에 공급하는 실적이 이를 받쳐주었다.

여기에 BYD도 22.0%(57.5GWh) 성장률과 함께 배터리 사용량 글로벌 2위를 기록했다. 중국의 두 기업이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의 53.6%를 차지했다.

국내 동종업체들은 한 자릿수 성장에 그렸다. 이에 반해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 중 가장 높은 17.4%(16.4GWh)의 성장률을 기록해 4.5%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일본 업체 중 유일하게 톱 10에 이름을 올린 파나소닉(Panasonic)이 전년 동기 대비 25.1% 역성장한 것을 보면 삼성SDI가 얼마나 상승세를 기록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물론 실적은 기대보다 약한 감이 있었다.

삼성SDI 2분기 실적은 매출이 4조 4,501억원, 영업이익이 2,802억원에 이르러 기대치보단

배터리 수요 둔화의 영향을 받으며 주춤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놀로 진격세이다. 게다가 시장 상승세가 가팔라 하반기와 내년도 시장 성장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배터리 전문 매체는 하반기부터 양극재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메탈 가격 하향 안정화를 전망하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 성장세는 분명히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신차들이 대거 하반기부터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어 시장 성장은 분명한 흐름으로 읽힌다.

또 중국산 배터리를 채택한 벤츠 등 주요 완성차들이 잇딴 화재라는 악재를 만난 것도 제품의 완성도가 높은 삼성SDI로서는 유리한 측면이 크다. 여기에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견제도 한 몫할 기세다.

이에 삼성SDI 경영진은 타자와 달리 인재 확충과 연구 투자 확충에 무게감을 두고 있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선 ‘배터리 혹한기의 중장기 투자’라는 말로 삼성SDI의 투지 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모습이다.

삼성SDI는 그동안도 프리미엄 전기차 중심의 선별 투자 방식을 지켜왔다. 그러면서 남들이 주춤한 상황에서 투자를 늘려가는 역발상의 전략적 스탠스를 보여주고 있다.

우수인력 확보가 최우선책

당장 우수 인재 영입을 위한 전략이 눈에 띈다.

삼성SDI의 인재 채용 전략은 눈길을 끄는 측면도 있다. 지난 3일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테크&커리어 포럼’에서 “초격차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인재에 대한 투자”라며 북미 석·박사급 인재 확보에 직접 나섰다.

이미 삼성SDI는 수년째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장기 포석을 진행하고 있다.

최 사장은 “삼성SDI는 2030년 글로벌 톱티어 회사를 목표로 외형적 성장과 함께 내실을 다지고 있다”면서 “이 목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재 수급”이라고 강조하며 경영진에게 우수 인재 채용을 강조하고 나섰다.

삼성SDI는 2023년과 2022년 7월과 10월에도 각 사업부 주요 개발 부문 임원들이 직접 나서 국내와 미주 박사급 인력을 대상으로 각각 ‘테크 & 커리어 포럼’을 진행했으며 2021년에는 국내 인력 수급을 위해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과대(POSTECH), 한양대와, 2022년에는 성균관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배터리 인재 양성 협약을 맺기도 했다.

이번 3일의 포럼도 주요 경영진들이 직접 나서 우수 인력을 채용하기 위한 석·박사급 인재 초청 행사였다. 당장 행사가 열린 보스턴이 인재 채용에는 최적합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SDI의 미국 내 첫 번째 연구소인 SDI R&D 아메리카(SDIRA)가 위치한 곳이고 이 연구소에서 배터리 혁신 기술과 차세대 배터리에 대한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포럼에는 최윤호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김윤창 연구소장 부사장, 안재우 People팀장 부사장 등 삼성SDI의 주요 경영진들이 참석했으며, 북미 주요 대학과 연구소 인력 90여명이 초청됐다.

유럽에 새 공장?

폴란드 언론은 최근 삼성SDI의 유럽 새 공장 건설을 보도한 바 있다.

폴란드 경제지 '풀스 비즈네수'(Puls Biznesu)는 최근 삼성SDI가 자국 항구 도시인 그단스크 부근에 20억 유로(약 3조 원)를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폴란드 당국과 협상 중이라고 보도했다. 삼성SDI에선 불필요한 경쟁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삼성SDI는 유럽 시장에 유독 눈길을 늘려왔다.

삼성SDI가 지난 6월 19일부터 3일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유럽 2024'에 참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때 용량과 안전성이 한층 더 강화된 SBB(Samsung Battery Box) 1.5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글로벌 ESS 시장 공략은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다.

'인터배터리 유럽'은 유럽 최대의 에너지 산업 관련 전시인 'The Smarter E Europe' 내 개최되는 전시 중 하나로 올해 총 2800개의 기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ESS 시장은 삼성SDI의 뿌리와 근간을 넓혀갈 중요한 기대 시장이다.

한편 전기차 시장을 노리는 삼성SDI는 현재 헝가리 괴드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운영 중이다. 보도가 연일 계속되는 이유는 괴드 공장에 생산능력을 당장 늘려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이다.

여기에 쏠린 전망은 삼성SDI가 헝가리 괴드 공장의 여분 공간에 대한 증설 투자를 시작한다는 것이고 둘째 헝가리 괴드 공장의 생산능력을 30~40GWh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를 60GWh로 늘리는 증설 작업을 추진 중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여기에 폴란드를 비롯한 추가 공장 신설 후보지를 물색하는 등 전기차 캐즘에도 오히려 설비투자를 확대하는 전략을 채택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선 이번 증설이 기정 사살화되면 배터리 생산라인을 3~4개 가량 추가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투자액도 늘려가는 모습이다.

지난 달 30일 김윤태 삼성SDI 경영지원실 상무는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상반기 기준으로 이미 전년 대비 두 배(3조 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했다”고 강조하면서 “삼성SDI는 중장기 성장을 위한 필수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인력과 연구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증권사 전문 투자자들은 이러한 차별적 투자가 오히려 어려울 때 급성장하는 삼성의 특별한 투자 방식이며 이를 통해 초격차를 이뤄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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