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실적 풍향계로 불리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2025년 1분기(9~11월) 실적에서 시장 전망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놨다. 고대역폭메모리(HBM) 호조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런 실적을 내놨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업계에 미칠 영향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날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이 전영현 부문장(부회장)의 주재로 글로벌전략회의를 시작했다.
마이크론은 18일(현지시간) 2025 회계연도 1분기 매출이 87억1000만달러(약 12조6251억), 주당순이익 1.79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가가 전망한 매출 89억9000만달러(약 13조310억), 주당순이익 1.92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산자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HBM 매출이 전 분기 대비 2배, 데이터센터 매출이 처음으로 전체 매출의 50%를 넘었다"고 설명했지만 이런 성과들이 실제 호실적으론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특히 마이크론이 온 힘을 쏟고 있는 HBM이 실적을 높이 끌어올리지 못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HBM은 만들어서 팔면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는 ‘고부가 제품’ 중 하나다. 마이크론은 최근 이 HBM과 관련해 여러 호재가 많았다.
마이크론은 5세대인 HBM3E 8단을 인공지능(AI) 칩 시장의 ‘큰손’ 엔비디아가 만드는 ‘블랙웰’에 맞게 설계하면서 이전보다 공급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고 HBM3E 12단은 고객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올해 2분기부터 내놓기 시작한 HBM3E의 8단과 12단은 내년까지 전량 매진됐다고 전분기 실적 발표 때 공언하기도 했다. 2026년부터는 6세대인 HBM4를 대량으로 생산하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실제 이런 소식들로 말미암아 미국 월가에선 마이크론이 이번 분기에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발표는 마이크론 전체 실적에서 HBM이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HBM 공급과잉과 D램 등 메모리 가격 급락 등 악재가 오히려 부각되는 모양새다.
HBM의 공급 과잉은 올해 초부터 계속 업계에서 우려를 해왔던 문제다. 이번 마이크론의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부터 HBM4와 단수를 더욱 높인 HBM3E를 두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파전이 더 뜨거워질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시장에 내놓는 HBM 공급량이 상당히 많아지면서 가격을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까지 고성능 HBM 메모리를 독자 개발하고 나서면서 공급 과잉 문제는 더욱 심화될 여지도 생겼다.
D램 가격 급락 여파도 적지 않다. D램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물량 공세 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지난 7월 2.1달러에서 11월 1.35달러로 넉 달 만에 35.7%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9월 이후 최저치다. 지난달에는 전달 대비 무려 20.59% 급락해 올해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번 실적 발표로 세계 1, 2위 메모리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사업전략 역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전자는 내년 말부터 HBM4를 양산하며 메모리 주도권 회복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SK 인공지능(AI) 서밋’을 통해서 HBM3E 16단 개발을 세계 최초로 공식화했다. 두 회사 모두 최근 HBM을 비롯한 메모리 사업에 집중하겠단 뜻을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보였지만 재검토 가능성이 생겼다.
HBM 외에도 낸드플래시 시장 동향도 예사롭지 않다. 일본 반도체 기업 키옥시아가 지난 18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낸드플래시 시장도 경쟁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키옥시아는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3인자'로 불린다.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데뷔하면서 이를 동력 삼아 시설 및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가능성이 있다. 키옥시아는 이번 상장으로 재무 안정성을 높이고 생산 확대를 위한 투자금 확보에 나설 방침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도 아직 확정 짓지 못한 점도 부담이다. 다음 달 새 행정부 출범까지 받지 못하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인텔, 마이크론에 이어 17일에는 대만 실리콘 웨이퍼 제조업체인 ‘글로벌웨이퍼스’가 최대 4억600만달러(약 5834억2200만원)의 미 정부 보조금을 받기로 최종 결정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64억달러(약 9조2000억원), 4억5000만달러(약 6400억원)의 보조금을 받는 예비거래각서를 맺고 협상 중이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