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반도체 사업에서 2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그친 건 중국발 저가 물량 공세로 주력인 범용(레거시) 메모리 반도체가 부진한데다 수요가 급증한 고대역폭 메모리(HBM)에서는 여전히 성과를 내지 못한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는 전 세대인 HBM3까진 엔비디아의 벽을 뚫었지만 HBM3E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HBM3E와 관련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중 검증 절차를 모두 마치고 공급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3분기 실적이 발표된 후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실적설명회에서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 향(向) 공급이 지연됐지만 퀄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을 이뤘다"며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 말했지만 그대로 되지 않았다.
이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가 HBM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곧 성공할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덧붙였지만, 언제쯤 퀄테스트가 완료될지에 대해선 확답을 내놓지 않아 업계에선 우려가 있었다.
엔비디아는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은 HBM을 사들이는 ‘큰 손’ 고객으로, 삼성으로선 반드시 잡아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이날 미국 유력 매체 블룸버그가 보도한 삼성전자의 HBM3E 8단 제품의 엔비디아 승인 소식은 그 진위 여부와 함께 반도체 사업에서 새로운 활로가 될지 주목된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익명의 소식통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의 HBM3E 8단 제품이 엔비디아의 승인을 받았고 이 제품이 중국 시장을 위해 특화된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칩 생산을 위해 공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HBM3E는 8단과 12단 제품이 엔비디아로부터 검증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8단이 통과됐다면 이제 12단만을 남겨두게 된다.
12단까지 통과할 경우, 다음 6세대인 HBM4 개발에도 탄력을 붙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실적을 높이기 위해선 적자 늪에 빠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도 건져 올려야 한다.
파운드리는 2023년 2조원의 적자를 냈고 지난해에도 비슷한 규모의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실적 발표에서 파운드리의 구체적인 적자 규모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시황 악화로 전년 대비 연간 투자 규모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바일 수요 부진 및 가동률 저하에 따라 실적 부진 지속이 예상되지만, AI·HPC 등 응용처 및 첨단 공정 수주 확대를 위해 공정 성숙도 향상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개선 의지를 보였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한진만 사장이 사령탑으로 부임한 지난해 12월 이후 2㎚(나노미터·1억분의 1m) 공정에서 안정된 수율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고객사들이 원하는 완제품을 문제없이 만들어낼 수 있음을 두 눈으로 확인시켜 실적을 개선해 나가겠단 심산이다.


이를 위해선 미국 시장에서 거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이 예정대로 완공되고 운영돼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변수가 생겨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산업·무역 정책을 총괄할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지명자가 최근 미국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반도체법 보조금을 받기로 미국 정부와 확정한 계약을 이행(honor)하겠냐는 질문에 "말할 수 없다.
내가 읽지 않은 무엇을 이행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반도체법을 "반도체 제조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우리의 능력에 대한 훌륭한 착수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우리가 그것들을 검토해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은 전임 정부 시절 이뤄진 조치로, 현 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제동을 걸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전임 정부와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최종 계약을 한 만큼, 변동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도 계약 내용에 일부 조건을 추가할 수는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앞서 삼성전자는 테일러시 공장에 370억 달러 이상 투자하기로 최종적으로 정하고 지난해 12월20일 미국 상무부와 47억4500만달러(약 6조9000억원)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계약에 최종 사인했다.
한편 스마트폰과 가전기기 등 디바이스경험(DX)부문 매출은 40조5000억원, 영업이익 2조3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모바일경험(MX)사업은 플래그십 신모델 출시 효과 감소 등으로 스마트폰 판매가 줄어 전분기 대비 매출 및 영업이익이 하락했다.
그러나 연간 기준 갤럭시 S24 시리즈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면서 플래그십 제품 매출은 견조한 성장을 보였고, 태블릿과 웨어러블 제품도 판매 수량 및 금액이 모두 성장했다.
네트워크는 국내를 비롯해 북미, 일본 등 국내외 주요 시장에서 매출 및 영업이익이 대폭 개선됐다.
TV사업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은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연말 성수기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매출이 확대됐으나, 전반적인 수요 정체 및 경쟁 심화에 따른 제반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소폭 감소했다.
생활가전은 업체 간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둔화됐으나, 비용 효율화 등을 추진해 전년 대비 실적이 개선됐다.
하만은 매출 3조9000억원, 영업이익 4000억원을 기록했다.
전장 사업의 안정적 수주가 지속되는 가운데 오디오 제품의 연말 성수기 판매를 확대해 매출이 증가했다.
디스플레이(SDC) 사업은 매출 8조1000억원, 영업이익 9000원을 기록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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