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충북 청주시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 후문 앞. 제법 쌀쌀한 날씨 속에 질병관리청 소속 연구원 세 명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럭 한 대가 들어오자 이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조심스레 트럭 속 냉동 기능을 가진 박스를 은행 내부로 옮기기 시작했다.
박스 안 내용물의 정체는 혈액과 혈청, 혈장, 연막 등 인체자원. 인체자원이란 혈액과 소변, 수술 후 조직 등과 같은 인체유래물과 유전 정보 등 보건의료 연구에 활용되는 연구소재다.
이날 입고품은 지난해 12월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구축 사업' 본사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들어온 인체자원이다.

인체자원들은 곧장 은행 2층으로 옮겨져 검수가 이뤄졌다.
사전에 등록한 정보의 인체자원이 맞는지, 상태가 불량하지 않은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연구원들은 냉동된 상태의 인체자원이 담긴 바이알(의약품 등 보관 용기)의 서리를 일일이 제거한 후, 바코드를 찍어 사전 정보와 다른 점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다행히 이날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구축 본사업 1호 인체자원은 모두 검수를 통과해 액체질소 냉동고에 보관됐다.
만약 검수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면 인체자원은 제작기관으로 반송된다.
질병관리청은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본사업이 지난해 시작된 이래 첫 인체자원 입고 절차가 이 같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12일 밝혔다.
사업은 한국인에 특화된 개인 맞춤형 정밀의료 기반 마련을 위해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질병청이 지원하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발주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의에 기반해 임상정보·공공데이터·유전체데이터 등 의료데이터를 개인 중심으로 통합·관리하는 사업이다.
1단계(2024~2028년) 동안 희귀질환자·중증질환자·일반참여자 총 77만2000명의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이 목표다.
이어 2단계 사업(2029~2032년) 추진을 통해 총 100만명의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한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전국 38개 병원이 모집기관으로 참여한다.
통상 주치의가 연구 필요성이 있는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당위성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 검체를 채취한다.
개인 자격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다.
참여 유형(희귀질환자·중증질환자·일반 참여자)에 맞는 기관을 방문해 동의서와 설문지 작성 후 혈액·소변 등 검체와 임상정보를 기탁할 수 있다.

참여자로부터 수집된 데이터와 검체는 데이터뱅크와 바이오뱅크를 통해 안전하게 보관·활용된다.
바이오뱅크란 인체유래물 또는 유전정보와 그에 관련된 역학정보, 임상정보 등을 수집 및 보존하는 기관이다.
2026년부터는 희귀·난치 질환이나 정밀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개발 등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대학·병원 등 연구자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사업은 인체자원이 국가 전략자산으로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이뤄졌다.
바이오 빅데이터는 신약과 의료기기 등의 개발에 필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코로나19 사태 당시 한 국내 업체가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에서 코로나19 양성 검체를 분양받아 신속진단 키트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김난희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도 한국인 맞춤형 유전체칩 데이터를 분양받아 지난해 당뇨병 예측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같은 중요성에 미국과 영국 등은 한발 먼저 인체자원 확보에 나서 이미 각각 65만명과 50만명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영 국립보건연구원장은 "고품질, 고부가가치 인체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해 보건의료 연구 및 산업에 활용하도록 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연구진이 풍부한 인체자원을 무료로 분양받아 좋은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길 바란다"며 "슈퍼컴퓨터가 없는 연구자들에겐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질병청의 컴퓨팅 파워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주=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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