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최고 자리를 건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경쟁이 최근 법정 공방과 물밑경쟁으로 격화되며 기아자동차가 6년 전 두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향배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182억원에 이르는 배상액을 두 회사 중 한 곳이 떠안을 가능성이 있어, 두 회사가 모두 두려워하는 진정한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22일 전선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LS전선과 대한전선은 2018년 9월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발생한 정전 사고와 관련된 사건으로 피소돼 대법원의 심리를 받고 있다.
기아차는 2018년 9월 신평택 복합화력발전소의 건설 부지 확보를 위해 송전선로의 이설에 협조하기로 하고 LS전선과 엠파워에는 시공을, 대한전선에는 자재 공급을 맡겼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되던 중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해 기아차가 막심한 손해를 입었다.
차량 생산라인 6개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생산 일정에 큰 차질을 빚었다.
약 1년이 지난 2019년 6월 기아차는 당시 손해에 대해 LS전선, 엠파워, 대한전선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기아차는 정전의 원인으로 땅 아래 송전선로를 이설하는 과정에서 세 회사가 하자 및 과실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모두 시공을 맡았던 LS전선에 단독 책임을 묻고 기아차에 손해의 일부를 배상해주라고 판결했다.
배상해야 할 금액만 달랐다.
1심은 기아차가 청구한 182억원 중 40%인 72억8400만원을, 2심은 이보다 감액한 54억6351만원을 배상액으로 결정했다.
반면 대한전선이 공급한 케이블, 스트레스콘 등 자재들은 하자가 없었다고 봐 배상책임이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LS전선은 이런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될 경우, LS전선으로선 배상 책임을 단독으로 떠안게 될 것이어서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다.
2심에서 나온 배상액 54억6351만원 또는 경우에 따라 파기환송심을 거쳐 배상액이 182억원 전부 인정될 때는 그 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
또 우리 기업 기아차와의 소송이란 점에서 업계에서 다져온 명예와 입지마저 실추될 수 있어 가볍게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나온 후 미칠 파장은 상당할 테지만, LS전선과 대한전선의 갈등은 이걸로 끝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투고 있는 큼지막한 사건들이 두 개 더 있어서다.
'특허침해' 소송도 대법원으로 넘어갈 형국을 보이고 있다.
LS전선이 2019년 대한전선의 부스덕트용 조인트키트 제품에 대해 자사의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이다.
버스덕트는 건물에 전기 에너지를 전달하는 배전급 설비다.
조인트키트는 버스덕트를 연결하는 부품이며 LS전선의 특허는 이 조인트키트의 일부 부속품에 적용돼 있다.
1심은 LS전선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여 4억9000만원을 대한전선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13일 2심도 대한전선이 LS전선에 1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이 나온 후 LS전선은 결과를 수용하는 듯한 입장을 낸 반면, 대한전선은 "향후 판결문을 면밀하게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상고 의지를 보였다.
LS전선과 대한전선은 충남 당진 고전압해저케이블(HVDC) 공장의 건축 설계 과정에서 기술이 유출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6월부터 경찰의 수사도 받고 있다.
경찰은 LS전선과 대한전선의 공장 건설에 잇달아 참여한 A건축사사무소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대한전선도 여기에 관여했는지 여부도 살펴보고 있다.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격전이 한창인 가운데 최근에는 대한전선의 모회사 호반그룹이 LS전선의 모회사인 LS 지분 일부를 매입한 것으로 지난 12일 확인돼 화제가 됐다.
매입한 지분 규모는 5%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을 빚고 있는 LS 측 지분을 확보하며 위력을 행사하고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는 의도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기술유출, 특허침해 등의 진위 여부에 대한 해석이 업계에서도 엇갈리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법원의 판결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