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규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지난 23일 오후 6시께 세상을 떠났다고 한국해운협회가 24일 전했다.
향년 98세.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울산에서 자란 고인은 1946년 진해고등상선학교(한국해양대의 전신) 항해학과에 들어가 해양대 1기 졸업생이 됐다.
1950년 1월 부영선박을 흡수해서 창립한 국영기업 대한해운공사에서 옹진호 일등항해사로 한국전쟁을 맞았다.

1954년 대한해운공사 초대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1955년 '한국해기사협회'의 전신인 '대한해기원협회' 부회장에 선임됐다.
1956년 등록번호 23번으로 갑종 선장 면허를 받았다.
해상법을 배우려고 국민대 법학과(야간부)를 다녔다.
고인의 업적 중 하나는 한국선급 설립에 기여한 일이다.
1950년대만 해도 한국 선박은 세계 최대인 로이드선급협회 등 외국 선급협회에 등록돼 있었고, 국내엔 선박 등급을 정하고 선박 구조·설비를 검사하는 선급협회가 없었다.
대한해운공사 해무조사역(과장)으로 근무하던 고인은 1960년 5월 황부길(1909∼1995) 해무청장에게 선급협회 설립을 제안했다.
해양대 1기생인 허동식씨가 한국선급협회를 설립할 때 고인도 18명의 발기인에 포함됐다.
1964년에는 풍국해운을 창업, 1966년 8월 보리수호(2597t)를 인수했다.
신태범이 상무로 있던 고려해운에 합쳤고, 이를 계기로 50년 우정을 이어갔다.
고려해운 전무로 있다 1972년 고려콘테이너터미날(현 KCTC)을 창업했다.
1980년 대표이사로 친정 고려해운에 복귀한 뒤 포항제철이 해운업에 진입하는 것을 막았고, 현대그룹의 현대상선이 원양 컨테이너선 사업에 진출할 때 회사 명맥을 유지했다.
고인이 고려해운 사장이 될 때 신태범은 KCTC 사장이 됐다.
1978년 8월 '한국해법회'(현 한국해법학회)를 창립, 부회장이 됐다.
1980년 5월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창단 발기인 및 부회장을 맡았다.
1982년 한국해운학회 창립 부회장이 됐다.
1985년 한국해사문제연구소 이사장 겸 월간 '해양한국' 발행인에 취임해 2002년 '해운물류큰사전'을 편찬하고, '한국해운편람'을 매년 발간했다.
1988년 제1호 '해운의 탑', 2010년 한국선주협회 창립 50주년 기념 첫 공로패를 각각 받았다.
유족은 부인 이화숙씨와 사이에 2남1녀(박정석 고려해운 회장, 박선아 감정평가사, 박주석 경희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3호실, 발인 26일 오전 8시20분, 장지 광릉추모공원. 02-3010-2000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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