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일관제철소 건설을 포함해 미국에 쏟아붓기로 한 31조원은 1986년 미국 진출 이래 최대 규모다.
미국 제조업 재건 등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정책에 부응해 관세폭탄을 피하고 미래 산업 분야에서 사업 기회를 확대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이번주 준공식을 앞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능력을 늘려 미국에서만 12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하면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부과할 관세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지어 25%의 철강 관세를 비껴가고 ‘철강-부품-자동차’로 이어지는 공급망 안정화도 꾀하게 됐다.
로보틱스와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분야 투자도 키워 미국 기업과 협력도 강화할 방침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이같은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점은 ‘현지 공급망 안정’이다.
정 회장은 미국 자동차 생산 대수를 20만대 확대하기로 한 계획과 함께 루이지애나주에 신설될 제철소를 소개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이번 투자의 핵심은 미국의 철강과 자동차 부품 공급망을 강화할 60억 달러의 투자"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모든 노력은 미국 내 공급망 현지화를 가속화하고 운영을 확장하며 미국 인력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제철이 건설하는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는 270만t 규모로, 저탄소 자동차 강판 제작에 특화됐다.
고품질 자동차 강판의 현지 공급을 통해 관세 등 대외 리스크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정 회장은 "루이지애나 제철소가 미국인 1300명을 신규 고용하게 될 것이며 "더 자립적이고 안정적인 미국의 자동차 공급망을 위한 근간"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즈벨트룸에 입장한 직후 곧장 정 회장에게 악수를 청했고 이후 장재훈 완성차 담당 부회장,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 현대차 사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는 "아름다운 발표를 할 것이다.
매우 흥분된다"면서 정 회장과 현대차 관계자를 소개하며 "큰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소개를 받아 연단에 선 정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에 연거푸 감사를 표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새로운 임기를 잘 출발한 것을 축하드린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괜찮았다(It has been good)"고 응수해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정 회장은 신규 투자를 발표한 조지아 공장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인연을 상기시켰다.
조지아주 사바나 공장 투자 계기를 언급하며 "2019년 서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미팅 때 시작됐다"며 "이듬해인 2020년 공장 신설 계획을 댈러스에서 언급했다"고 회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회장의 연설 중간 짤막하게 "고맙다(Thank you)"고 말하기도 했다.
정 회장의 발표가 끝나자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만들 것이다.
그 결과 관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며 "이번 투자는 관세가 매우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는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마이크 존슨(루이지애나) 미 연방 하원의장, 스티브 스칼리스(루이지애나)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미 정계 고위 인사들이 동석했다.

현대차그룹의 대미 투자는 ▲자동차 ▲부품·물류·철강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으로 나뉜다.
자동차 부문에 총 86억달러를 투자해 향후 HMGMA 20만대 증설을 통해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을 포함한 미국 생산기지 전체 생산능력을 120만대로 늘린다.
부품·물류·철강 부문에서는 제철소 신설에 58억달러를 포함해 부품·물류·철강 그룹사들이 총 61억달러를 집행한다.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전기차 핵심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한다.
자율주행, 로봇, AI,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미래산업·에너지 부문에는 63억달러가 배정됐다.
엔비디아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로보틱스 등 모빌리티 솔루션을 지능화하고 사업 전반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미국 자율주행기업 웨이모와 아이오닉 5를 활용해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 ‘웨이모 원’을 확대한다.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나믹스와 ‘로보틱스 앤 AI 연구소(RAI)’는 강화학습 기반 지능형 로봇을 개발하고 슈퍼널은 2028년 AAM 기체 상용화를 목표로 미국 여러 주와 무인 항공기 테스트 협업을 추진한다.
미래 기술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분야와 전기차 충전소 확충에도 힘을 보탠다.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 인터내셔널과 올해 말 미국 미시건주에 소형모듈형원전(SMR)을 착공을 추진한다.
전기차 초고속 충전 서비스 연합체인 아이오나(IONNA)를 통해 충전소도 늘린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과감한 투자와 핵심 기술 내재화, 국내외 톱티어 기업들과 전략적 협력 등을 통해 미래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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