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가 한국과의 방위산업 협력 확대를 위해 해운 보호법인 '존스법(Jones Act)' 폐지를 공식 언급했다.
전시 정비 공백을 해소하려면 한국 조선업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방산 분야 상호 무역 협정인 한미 상호 국방조달협정 체결을 통해 한국산 무기체계 도입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미 산업협력 콘퍼런스'에서 로버트 피터스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영상 발제를 통해 "미국의 함정, 항공기, 탄약은 유사시 전력 대응에 충분하지 않다"며 "특히 노후 함정의 정비 수요 급증으로 조선소 공간이 잠식돼 신규 함정 건조까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유지보수(MRO, Maintenance·Repair·Overhaul) 협력을 확대하면 전시에 미국 본토로 돌아갈 필요 없이 한국에서 전투함을 수리할 수 있으며, 평시에는 조선소 여유 공간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피터스 연구원은 이 같은 협력의 전제 조건으로 존스법 폐지를 지목했다.
존스법은 미국 내 항구 사이를 오가는 모든 화물 운송을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 국적을 가진 선박이며, 미국인 소유·운항 선박에만 허용하는 내용이다.
그는 "이 법이 유지되는 한 한국과의 실질적 건조 협력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피터스 연구원은 이어 "한미 양국이 상호 국방조달협정(RDP)을 체결해 한국과 미국이 방산 분야에서 자유무역지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헤리티지재단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헤리티지는 자국 산업 보호와 군사력 강화를 중시하는 보수 진영의 대표 싱크탱크다.
그러나 피터스 연구원은 정비 병목이 오히려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보호무역보다 작전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전략적 접근을 제시했다.
이는 보수 진영 내부에서 산업 효율성과 안보 실효성 간 균형을 고민하는 실용주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문근식 한양대 교수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북극해 개발을 위해 필요한 쇄방선은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다"며 "쇄빙선 건조를 위해서는 존스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미 방산 협력을 위해서는 존스법 이외에도 번스-톨레프슨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존스법이 상선과 관련한 규제라면 번스-톨레프슨법은 군함 건조와 관련한 규제다.
정우만 HD현대중공업 상무는 "미 해군은 향후 30년간 364척의 군함을 새로 건조할 계획을 갖고 있으나, 현재 미국 조선 역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미국의 존스법, 번스-톨레프슨법 때문에 선박과 함정을 해외에서 건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어 법적 규제 선결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조선·방산 외에도 에너지,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가 논의됐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미국이 우리에게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에 원자력을 수출할 수 있다"며 "미국 웨스팅하우스만으로는 미국 내 원전을 다 건설할 수 없는 만큼 한국형 원자로(APR1400)를 미국에 수출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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