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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현의 톡톡톡] 대한민국을 하나로

3월의 첫날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삼일절입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가 한반도 전역에 휘몰아친 날이었죠. 삼일운동의 발발 계기는 갑작스러운 고종의 사망이었지만, 이 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이끌 조직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 결성을 필두로, 상하이에서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임시의정원을 만들었으며, 국내에서는 경성에 13도 대표국민대회의 명의로 한성정부를 선포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DNA는 그 당시에도 무슨 일을 하든 온 국민이 열심이었는지, 그 외에도 고려, 신한민국, 조선 민국 등의 이름으로 여러 단체가 생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을 제대로 하려면 같은 편끼리는 힘을 모아야겠죠. 그래서 그 당시 국제언론에 알려지고 13도 대표국민대회를 통해 결성된 한성정부의 정통성을 따르면서 상하이에서 제정된 임시헌장을 바탕으로 통합된 첫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9월에 상하이에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 당시 추대된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었죠. 그리고 독립을 되찾았던 45년의 임시정부 수장이 김구 선생이었습니다.
임시정부에 여러 명의 수장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두 분입니다.

하지만 임시정부 수립 당시부터 현실적으로 필요한 조직구성과 자금을 마련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는군요.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맡은 바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애국으로, 조국을 망하게 한 것이 이완용뿐 아니라 나도 그 책임자라는 생각으로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오렌지를 따는 노동도 신성하고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도산선생. 그분에게 비난의 말을 던지는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묘하게 이승만과 김구를 따르는 사람들은 현재에도 둘로 나누어진 그림입니다.
2025년 현재, 날로 심각해지는 국론 분열을 보며 1927년 도산선생께서 청년에게 부치신 글을 남길까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는 아량이 없고 오직 저만 옳다 함으로 그 혹독한 당쟁이 생긴 것이다.
나도 잘못할 수 있는 동시에 남도 옳을 수 있거늘 내 뜻과 같지 않다고 해서 이를 사문난적이라고까지 하여 멸족까지 하는 악습이 지금까지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비록 의견이 서로서로 다르더라도 우정과 존경에는 변함이 없음이 문명국민의 본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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