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평양냉면 같은 작품이다.
밋밋한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시간과 공을 들여 끓여냈다.
”

지난 27일 혜화 유니플렉스에서 열린 ‘안나, 차이코프스키’ 프레스콜에서 세자르 역을 맡은 테이의 말이다.
테이가 민족음악의 대변자 ‘세자르’ 역을 맡은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와 문학가 안나가 국가를 위한 음악과 문학을 거부하면서 탄압받는 상황에서 서로 의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테이의 말처럼 작품은 자극적이지 않은 감칠맛을 자아낸다.
대학로 최초로 선보이는 9인조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뮤지컬 넘버로 재탄생시켜 선보인다.
서정적 멜로디가 배우들의 폭발적 가창력에 얹힌 시적인 가사를 허공에 가른다.

무대도 심심한 뮤지컬에 어울린다.
한눈에 들어오는 2층 무대는 19세기 러시아의 도심과 수도원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수도원은 차이코프스키와 안나가 도피를 위해 찾는 곳이다.
두 공간은 조명효과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러시아는 차가운 조명, 수도원은 햇살을 연상케 하는 따뜻한 조명이 무대를 비춘다.

그런데 왜 하필 차이코프스키였을까. 허강녕 대표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통해 여러 군상들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찾고자 했다”며 “우리 뮤지컬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곡을 맡은 이진욱 작곡가는 “대가의 작품을 만지는 데 심적 부담이 컸다.
멜로디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을 많이 고민했다”며 “좋은 배우들을 여한 없이 뽑아 먹어 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배우들의 인물 탐구가 잘 이뤄져 좋은 음악이 나왔다”고 전했다.

극의 백미 중 하나는 안나 역을 맡은 김송향과 에녹 배우가 부르는 ‘작은 꽃’이다.
가쁜 호흡을 끌어가며 거침없이 내뱉는 발성은 관객의 귀를 자극한다.
김소향 배우는 “‘내 향기 하나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이라는 ‘작은꽃’ 가사에 감동해서 여기까지 왔다”며 “이 메시지만큼은 꼭 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아우르는 정서 중 하나는 결여다.
황두수 연출가는 “차이코프스키는 어머니에게 부정당한 후 환상 속으로 도망가는 창구가 음악이었다”며 “모두가 지닌 그런 결여가 작품을 현실의 관객과 맞닿게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차이코프스키는 네살 때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영재였다.
하지만 부모님 뜻에 따라 법률을 전공해야 했다.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동성애자로 알려진 그는 1877년 여제자인 안토니와 결혼을 하지만 3개월 만에 이혼한다.
다만 뒤늦게 음악을 시작해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의 3대 발레 작품을 남겼다.

공연은 다음 달 30일까지 유니플렉스 1관에서 관객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