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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이 월지 동쪽 터를 동궁 자리라 확신하는 이유

신라 태자의 독립적 공간인 동궁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6일 "동궁이 그동안 알려졌던 것처럼 월지 서쪽에 있는 대형 건물터가 아니라 월지 동쪽에 있었다고 추정된다"고 밝혔다.



기존 해석과 충돌하는 주장이다.
학계는 월지의 왼쪽인 Ⅰ-가 지구 일대를 동궁 터로 인식해왔다.
1975년부터 약 2년간 진행된 조사에서 '의봉사년개토(儀鳳四年皆土)'를 새긴 기와 등 동궁과 관련한 유물이 여럿 확인됐기 때문이다.
의봉사년은 당나라 연호로, 동궁을 창건했다는 문무왕 19년(679)을 뜻한다.
건물지가 신라 왕성이었던 경주 월성(月城)의 동쪽에 있다는 점도 이런 가설을 뒷받침했다.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 등에 따르면 임금은 만물의 성취가 있는 서쪽, 태자는 만물의 생장이 있는 동쪽에 머물렀다.


속설은 국가유산청이 2014년부터 진행 중인 발굴 조사로 완전히 뒤집혔다.
월지 동쪽인 Ⅱ-나 지구 일대에서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 크기의 건물터 흔적이 발견됐다.
규모는 월지 서쪽에 있는 건물(정면 일곱 칸, 측면 네 칸)보다 크지 않다.
계단 진입 부분을 기준으로 한 높이도 해발 50.3m로, 52.6m인 서쪽보다 낮다.



국가유산청은 건물의 위계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해석했다.
최응천 청장은 이날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동궁 건물은 대지를 조성하는 단계부터 왕과 태자의 공간이라는 위계 차이를 두고 경관 조성을 계획적으로 한 것"이라며 "월지 동쪽 건물터를 동궁으로 보고, 그동안 동궁으로 여겨졌던 서쪽 건물터를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김경렬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사도 "그간의 조사 성과와 출토 유물을 고려하면 동쪽 건물이 동궁이었을 가능성은 95%"라고 밝혔다.
결정적 증거로는 특수한 건축 기법을 꼽았다.
국가유산청은 이 일대에서 복도식 건물에 둘러싸인 건물과 넓은 마당 시설 등의 흔적을 발견했다.
건물을 연결하는 계단 흔적도 찾았는데, 넓은 기단 형태의 월대(넓은 기단 형식의 대) 공간을 증축했다고 추정된다.
월대는 궁궐과 같은 주요 건물에만 설치된다.



이 건물터 남쪽에서는 별도로 조성된 원지(園池·연못) 흔적도 확인됐다.
연못의 중앙과 남쪽에 섬을 구축한 흔적이 있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했으리라 추정된다.
최 청장은 "독립된 배수 체계를 갖추고 있어 신라인들의 토목 기술은 물론 '동궁과 월지'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근방에서는 진귀한 유물도 여럿 출토됐다.
2017년 발견된 상아(코끼리 엄니)로 제작한 주사위와 2022년 확인된 금박에 멧비둘기 한 쌍과 꽃을 세밀하게 새긴 '화조도(花鳥圖)'가 대표적 예다.
최 청장은 "주사위는 희귀한 상아로 제작한 고급 놀이기구이고, 얇게 편 금박에 머리카락 굵기의 절반가량 되는 선으로 새와 꽃을 새긴 화조도는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세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종훈 역사유적정책관은 "두 유물이 출토된 곳은 '진짜 동궁'의 북쪽"이라며 "태자와 그를 보좌하기 위한 궁인들이 생활한 공간이었으리라 추정된다"고 밝혔다.
화조도가 부착된 회화 앞에서 태자가 궁인들과 주사위 놀이를 했을 수도 있는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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