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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 작가, 25년 만에 신작 소설집 ‘흰 산 기슭’ 출간

흰 산 기슭/ 박덕규/ 곰곰나루/ 1만8000원

문단에서 흔치 않은 ‘다장르 작가’ 박덕규가 최근 25년 만에 신작 소설집 ‘흰 산 기슭’을 냈다.
박덕규는 1980년 동인지 ‘시운동’으로 시인으로 등단한 데 이어,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와 월간지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올렸다.
1994년에는 계간 ‘상상’으로 소설가로도 데뷔한 후 ‘날아라 거북이!’(1996) ‘포구에서 온 편지’ (1999) 등을 낸 바 있다.


그 후, 긴세월 작품활동보다는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전념해온 그가 긴 침묵을 깨고 펴낸 이 소설집에는 표제작 ‘흰 산 기슭’, 일반 단편의 두 배분량인 ‘구부러진 물길’, ‘소나기’(황순원) 이어쓰기로 쓴 기획소설 ‘사람의 별’, ‘지렁이, 지렁이떼’, ‘싸락눈’, ‘비밀의 방’, ‘조선족 소녀‘ 총 7편이 수록돼 있다.

많게는 거의 25년의 시차가 있는 만큼 작품의 배경에는 시대 흐름이 뚜렷하다.
가령 2000년대 초반 작인 ‘지렁이, 지렁이떼‘나 ‘비밀의 방’은 PC통신을 소통의 도구로 삼은 인물들이 출몰한다.
이에 반해 최근작 ‘흰 산 기슭’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글을 쓰고 새로운 프로젝트도 제안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이런 변화 아래 이들 인물들은 그 시대 자본주의 체제가 구축하고 있는 삶의 허상을 보여주는 표상으로 자리한다.

특히 주목되는 면모는 여러 작품에서 그 인물들이 작중의 현시점에서 ‘종적을 감춘 상태’로 사건이 중심에 놓인다는 점이다.
가령 ‘지렁이, 지렁이떼’에서 개강을 앞두고 갑자기 종적을 감춘 강사 김하근이 그렇다.
학생들은 김 강사가 하던 강의에서 활용한 한 단편소설을 낭독극 동영상으로 만들어 널리 퍼뜨리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로써 개발 일변도의 시스템이 환경을 파괴하면서 결국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김 강사의 경고가 선명해진다.
김 강사의 실종은 바로 이 경고를 상징한다.

박덕규/곰곰나루/1만8000원
‘싸락눈’의 인물 중세는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는 과정에서 부도를 내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해외 도피 중 항공기 폭파로 사망했다.
그의 사업에 연루돼 상당한 재산 피해를 입은 두 형제는 중세의 사고사를 추모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비밀의 방’의 정균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자괴감을 안고 지내다 ‘인류가 아닌 생은 의미가 없다’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식물인간이 된 상태로 십수 년째다.
남은 가족들은 그를 ‘비밀의 방’에 두고 보호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중편 분량에 가까운 ‘구부러진 물길’의 차동하는 촉망받는 시인이자 교수였으나 불미한 일로 물러나 학교 언저리의 비정규적인 지식노동자로 지내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친구이자 선배인 ‘나’는 그가 남긴 미완성 유작에서 일종의 ‘출생의 비밀’을 발견하고 이를 밝혀 새로운 소설을 완성하고자 한다.
이런 인물들은 표제작 ‘흰 산 기슭’에서 만년설이 보이는 미국 시애틀에서 살면서 국내의 한 통일운동가에게 ‘비눗방울 프로젝트’라는 획기적인 대북 전단살포법을 제안한 동준으로 이어진다.
동준은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곳 교민들이 ‘흰 산’이라 부르는 만년설 기슭으로 이주해 종적을 감춘다.

이런 인물을 통해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출세에 목숨을 내건 한국식 자본주의의 폐해다.
작가는 성장 과정에서부터 입시를 통해 ‘일류’를 지향함으로써 그것에 따른 무수한 대리충족의 욕망이 결국 삶을 일그러뜨린다는 점을 이들 ‘사라진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 듯하다.
‘흰 산 기슭’은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 양식까지 실험하고 있다는 특징으로도 읽을 만하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대한 오마주 소설 ‘사람의 별’의 특이한 SF형식도 흥미롭다.
202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자 김유림이 ‘무너진 사람들, 그 배후’라는 권말 해설로 호응했다.

박덕규는 “세계사의 격류, 국내 정치사회의 격랑, 그 포말에 휘말린 개인의 부침을 당연히 주제나 소재로 잡았다.
그걸 드러내는 서사기법의 변주나 실험도 단편소설답게 발현했다.
무엇보다 내 나이 장년에서 노년으로 이르는 시기의 삶의 아픔을 지난날의 추억에 뒤섞는 체험적 상상으로 서사의 축을 세웠고, 후회와 회한에서 얻은 나름의 교훈으로 한 연대를 아우르거나 미래를 예감하는 기세도 가미했다”고 말했다.

박태해 선임기자??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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