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관객 200만명 돌파
인간의 순수성과 욕망 교차
복잡한 심리 정밀하게 포착
심장을 울리는 음악도 풍부
브로드웨이 작품 원형 유지
연출·의상 등 한국식 각색
관객의 끊임없는 사랑 받아
20주년 기념 공연도 흥행
‘세번째 무대’ 신성록·린아
‘100%+알파’ 완벽한 연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다시 한 번 명작의 저력을 입증하고 있다.
한 시즌에 3개월을 넘기기 어려운 국내 뮤지컬 분야에서 지난해 11월 개막한 한국 초연 20주년 기념 공연이 이례적인 6개월 장기 일정으로 순항 중이다.
평일 낮 공연조차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객석 반응은 뜨겁고, 최근에는 누적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1966년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로 시작된 국내 뮤지컬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작품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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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신성록과 린아가 하이드와 루시의 이중창 ‘나도 몰랐던 나’를 부르고 있다. 이상주의자였던 지킬과 악의 화신 하이드, 극단적인 두 자아의 충돌 속에서 무대는 인간 본성과 욕망, 파멸로 향하는 운명을 극적으로 펼쳐낸다. 오디컴퍼니 제공 |
‘지킬앤하이드’의 생명력이 특별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성과 감각을 지켜나가며 관객과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사·숙녀가 티파티를 즐기는 타운하우스와 범죄가 들끓는 뒷골목이 공존하는 19세기 후반 런던이 배경이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이라는 불변의 주제를 앞세워 인간의 위선과 욕망, 순수와 집착이 교차하는 복잡한 심리를 정밀하게 포착해낸다.
선·악의 화신인 주역은 물론, 주교·장군·변호사·포주 등 사회 각 계층 인물이 낭비 없이 등장해 문명화된 얼굴 뒤편에서 폭력과 쾌락이 터져 나오던 시대의 충격적 사건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주인공 지킬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사랑을 보여주는 엠마와 루시는 각각 이상과 현실, 헌신과 욕망을 상징한다.
◆관록의 신성록과 린아
지난 26일 낮 공연에서 지킬·하이드로 무대에 오른 신성록과 루시 역의 린아는 대극장 뮤지컬 주역이 보여줘야 할 ‘100%+알파’의 역량을 증명해 보였다.
2017년, 2021년 공연에 이어 세 번째로 이 작품 무대에 오른 신성록은 선·악을 넘나드는 1인 2역의 모범을 보여줬다.
지킬 역에선 최대한 연기를 절제하다 하이드로 나타나는 순간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변신을 선택한 지킬의 내적 결단을 담은 ‘지금 이 순간’의 대척점에 서 있는 하이드의 테마곡 ‘얼라이브’에서 신성록은 인습과 도덕률에서 풀려난 하이드의 해방감과 광기를 포효하듯 쏟아냈다.
하이드가 지닌 진짜 매력이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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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에게 끌리는 순수한 사랑과 하이드에게 굴복하고 마는 위험한 욕망 사이에서 복잡하게 흔들리는 마음이 드러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하이드에게 끌리면서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장면의 이중창 ‘나도 몰랐던 나’에선 흔들리는 눈빛과 정교한 음색으로, 루시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구축했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균형 잡힌 음색 조절이 필요한 어려운 노래를 자기만의 색깔로 소화하며 ‘완성형 루시’를 보여줬다.
◆지킬앤하이드의 매력
국내 관객이 아주 좋아하는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지킬앤하이드’는 혈통을 따지자면 ‘토종’은 아니지만, 어느새 한국 국적을 취득한 듯한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 휴스턴에서 초연,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후 간헐적인 재공연을 거쳐 조기 폐막된 2013년 시즌이 마지막 무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2004년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논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초연되며 흥행 대기록을 세우기 시작했다.
원작의 대본과 음악은 유지하되, 연출·무대·의상은 한국 정서에 맞게 새롭게 해석한 이 공연은 국내 대형 뮤지컬 최초의 논레플리카 시도로 기록된다.
이후 다양한 작품이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며, 국내 뮤지컬 창작 역량을 키우는 전환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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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 흥행 성공에 힘입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 프랭크 와일드혼은 ‘스칼렛 핌퍼넬’, ‘몬테크리스토’ 등 여러 뮤지컬을 작곡했다.
특히 2016년 ‘마타하리’를 시작으로 2018년 ‘웃는 남자’ 등 K뮤지컬 제작에 작곡자로 참여하고 있다.
와일드혼 인생작으로서 ‘지킬앤하이드’에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감정을 고조시키는 구조의 ‘심장을 울리는 넘버’, 드라마틱한 곡이 풍부하다.
‘지금 이 순간’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지킬과 하이드의 내면 충돌을 포착한 ‘대결’, 루시의 절박한 바람을 담은 ‘시작해 새 인생’ 등 감각적인 넘버들이 객석을 끊임없이 흔든다.
관객의 발길을 다시 극장으로 이끄는 힘을 보여주며 명작 반열에 오를 자격을 입증한 무대다.
서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5월26일까지.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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