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모두 무죄 판단 배경은
“상속·순환 출자 등 규제에 대응해
미래전략실 계획안 따라 합병 추진”
‘李 회장이 관여’ 검찰 주장도 배척
삼성물산 주주 등 재산상 손해 관련
“경영권 안정화로 주주에 이익” 지적
법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1명, 삼정회계법인과 회계사 2명 전원에게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수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5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2015년 합병돼 이 회장에게 삼성그룹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 회장의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 | 사진=남정탁 기자 |
재판부는 우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즉 양 사의 합병이 오로지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등 행위가 있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일모직 최대 주주(23.2%)였던 이 회장은 삼성물산 주식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의 비율로 이뤄진 양 사 합병으로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 최대 주주(16.5%)로 올라섰고,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을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을 이 회장의 경영권 강화 및 승계로 단정할 수 없고,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된다 하더라도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삼성의 옛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마련한 ‘프로젝트-G’(Governance·지배 구조)란 승계 계획안에 따라 합병이 추진됐고 이 과정에 이 회장이 관여했다는 검찰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과 미래전략실이 합병을 결정했다고 볼 수 없고, 양 사 이사회의 실질적인 검토로 결정됐다”고 판시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종전에 내부적으로 검토한 지배 구조안 중 이건희 전 회장의 사망에 따른 막대한 상속, 순환 출자 등 외부 규제에 대응해 종합적으로 검토·추진된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이 같은 방식의 합병이 삼성물산과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경영권 안정화는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 역시 무죄로 판단됐다.
검찰은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이었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미국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보유 사실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회계에 부채로 반영하며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혐의도 적용했다.
재판부는 “증거에 비춰 보더라도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을 은폐했다고 볼 수 없고,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삼성바이오에피스 압수수색 자료,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문자 등은 “위법하게 압수한 증거”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 수사는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시작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 직원들의 휴대전화와 컴퓨터 등에서 당시 이 부회장을 뜻하는 JY 등 관련 자료가 삭제된 점이 드러났다.
2020년 들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을 둘러싼 본격적인 수사로 확대됐다.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으나, 검찰은 그해 9월 이 회장 등 삼성 전·현직 경영진 11명을 기소했다.
검찰 수사 기록이 19만쪽에 이른다.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가 수사를 매듭지었다.
 |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5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 결심공판까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재판이 106차례 진행됐다.
이 회장은 이 중 11차례만 불출석했다.
대법원에서 결론이 나려면 최소 3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금감원 기자 간담회에서 이 회장 1심 선고와 관련해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나 삼성그룹의 위상에 비춰 사법 리스크를 일단락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영·백준무·이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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