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2주 만에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을 방문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스페이스X 로켓 시험발사를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모자를 쓰고 나온 트럼프 당선인은 로켓 '스타십'이 하늘로 떠오르자 미소를 지었다.
텍사스주 남부에 있는 브라운스빌은 스페이스X 발사 기지인 스타베이스가 있다. 2014년 스타베이스가 구축되면서 이 지역은 별 볼일 없던 가난한 이민자 마을에서 경제가 살아나는 도시로 변모했다. 변화를 이끈 머스크 CEO의 존재감은 도시 곳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스타베이스로 가는 길목에는 머스크 CEO의 흉상과 그의 얼굴을 그린 포스터가 즐비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브라운스빌이 속한 캐머런 카운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승리를 거두는 데 머스크 CEO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 지역에서 멕시코, 미국, 테하노(멕시코계 텍사스 주민)의 옛 문화와 우주, 우주 비행사 등 새로운 것과 충돌했다며 "머스크 CEO의 존재감과 로켓이 이 카운티의 문화와 정치를 형성하고 재편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캐머런 카운티는 그동안 민주당 텃밭으로 분류된 지역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53%의 득표율로 승리를 거뒀다. 공화당 대선 후보가 이 지역에서 승리를 거둔 건 2004년 조지 W.부시 전 대통령 이후 처음이었다. 이 카운티의 최대 도시인 브라운스빌은 19만명에 달하는 주민 중 95%가 히스패닉계로 구성돼 있으며 빈곤율이 다른 지역 평균보다 높다.
트럼프 당선인이 승기를 잡은 배경을 두고 그의 역할 보다는 '퍼스트 버디(first buddy·1호 친구)' 머스크 CEO의 영향력이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머스크 CEO의 영향력이 특히 컸던 부분은 지역 경제 발전이다. 지역 발간 보고서를 보면 캐머런 카운티의 정규직·계약직 일자리 3400여개가 현재 스페이스X와 직접 관련돼 있으며 2만1400여개는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한다. 스페이스X가 자리 잡으면서 식당이나 쇼핑센터가 곳곳에 들어서는 등 부동산 경기도 살아난 상태다.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의 이사 중 하나인 조이 키로가 텍사스국립은행 사장은 올해 초 한 팟캐스트에서 "스페이스X로 브라운스빌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고소득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며, 브라운스빌이 지도에 표시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NYT도 취재 중 만난 카운티 주민들이 머스크 CEO를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으로 나뉘었으나 그가 카운티 내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관광을 촉진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했다고 전했다. 지역 공무원과 재계 인사들은 스페이스X가 주목을 받을수록 수백만 달러의 매출과 관광을 창출하는 경제 개발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머스크 CEO도 이 지역에 침실 3개짜리 자택을 구입해 직접 머물면서 지역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미 대선 당일 브라운스빌의 한 사회복지센터에서 투표를 마친 뒤 투표소 직원들과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과달루페 코레아 카브레라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머스크 CEO가 화성 탐사에 성공해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인 이 카운티를 끌고 가겠다는 열망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이번 승리가 지역의 정치색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머스크 CEO 효과로 인한 일회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지적도 제기한다. 또 브라운스빌이 멕시코와 맞닿아 있는 국경 지역이라는 점에서 이민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을 우려한 주민들이 반이민 정책을 펼치는 트럼프 당선인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