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 저가 상품의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더 크게 오르는 '칩플레이션'(Cheapflation)이 발생하면서 저가 상품 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더 큰 인플레이션 고통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BOK 이슈노트, 팬데믹 이후 칩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가공식품 판매 정보를 바탕으로 2020년 1월~2023년 9월 기간 중 누적 가격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 저가 상품(1분위)의 가격은 16.4% 상승했지만 고가 상품(4분위)의 가격은 5.6% 상승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저가 상품의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3배가량 더 크게 오른 것이다.
저가와 고가 상품 간의 가격 상승률 격차는 인플레이션 급등기에 크게 확대됐다. 2022년 7월 전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3%로 정점을 찍었는데, 가공식품만을 대상으로 한 가공식품 CPI는 2023년 2월 10%대까지 올랐다. 2023년 초 저가 상품(1분위)의 가격 상승률은 8%를 웃돌았고 고가 상품(4분위)은 3%대 초반의 상승률을 보이는 등 큰 격차를 보였다. 저소득층, 인플레 급등에 더 큰 고통…고소득층보다 실효 물가상승률 1.3%P 높아 이로 인해 저소득층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4분기~2023년 3분기 중 저소득층(하위 20%)의 누적 실효 물가상승률은 13%로 고소득층(상위 20%) 11.7%보다 1.3%포인트 높았다. 저소득층이 가격이 더 빠르게 상승한 저가 상품에 지출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컸기 때문이다. 칩플레이션 효과에 더해 소득분위별 소비 품목 구성 차이에 따른 물가상승률 격차(1.1%포인트)까지 포함하면 가계 소득에 따라 인플레이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들은 수입 원자재가격의 급격한 상승과 저렴한 상품으로의 지출 전환이 국내에 칩플레이션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저가 상품은 제조 과정에서 비용을 낮추기 위해 가격이 비교적 낮은 수입 원자재를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팬데믹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저가 상품의 판매가격으로 전가된 것이다. 또 가계가 고인플레이션 시기에 실질소득 감소로 인한 부담을 줄이고자 더 싼 상품을, 더 싸게 판매하는 곳으로 이동하면서 수요가 많아진 저가 상품의 가격이 더 오르게 된 것이다.
"물가안정 기조 유지·중저가 상품 가격안정 집중해야" 칩플레이션으로 인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통화정책으로 전체적인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고, 정부 정책을 통해 중저가 상품의 가격안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보고서를 작성한 조강철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차장은 "저소득층이 더 고통받는 칩플레이션은 물가 급등기에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며 "통화정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물가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저소득층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정책 측면에서는 향후 인플레이션이 높은 시기, 특히 중저가 상품의 가격안정에 집중함으로써 취약계층의 부담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해외공급 충격을 완충하기 위한 할당관세나 가격급등 품목에 대한 할인지원 시 중저가 사품에 선별지원을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