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에 현 정부 핵심 금융 정책인 산업은행 이전 백지화
노조 "기업 어려움에 처한 시기, 산업은행 이전은 국가 경제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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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가운데 현 정부의 핵심 금융 정책이었던 한국산업은행 이전이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가운데 현 정부의 핵심 금융 정책이었던 한국산업은행 이전이 사실상 흐지부지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산업은행 안팎에서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공약으로 산업은행 이전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노조 측은 여전히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강하게 반대하며 국가 발전을 위해선 금융 산업을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고민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약속했다. 당선 후 새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현재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옮겨 국가 균형 및 금융 중심지 발전을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2023년 5월 국토교통부가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했고 산업은행은 같은 해 7월 모든 기능과 조직을 부산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금융당국에 보고했다. 또 지난해 1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부산에 조직을 신설하고 직원들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사실상 멈춰섰다. 산업은행은 올해 신년 조직개편에서 부산 이전 관련 부서 신설이나 인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도 지난해 신년사에서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남부권 경제 성장의 축으로 발전시키겠다며 강조했으나 올해 신년사에서는 부울경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산업은행의 지방 이전은 사실상 좌초됐다는 평가도 따른다. 강석훈 회장은 2022년 6월 취임 이후 윤 전 대통령의 공약인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주도해 왔으나 그의 임기는 오는 6월 6일까지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필요성과 관련해 여·야의 의견도 모이지 않고 있다.
현행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제1항은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한다. 부산으로 이전하기 위해선 해당 조항을 바꿔야 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6월 이 같은 내용이 골자가 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있다. 민주당은 산업은행법을 고치는 데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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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노동조합원 400여명은 지난달 10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부산 이전 정책이 졸속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 |
노조 측에선 여전히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원 400여명은 지난달 10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부산 이전 정책이 졸속이라며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김현준 산은 노조 위원장은 성명서를 통해 "장제원 의원 등 부산 지역 윤핵관들은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산업은행을 전리품 취급하고 있다"며 "고물가·고금리로 모든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한 시기에 산업은행을 이전해 국가 경제를 파탄 내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논의 없이 졸속 이전을 지속해서 강행한다면 그 어떠한 국민도 이를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강석훈 회장은 지난 1월 팀장·팀원 인사를 통해 본점 직원 45명을 부산 지역으로 발령냈다. 이에 산은 노조는 지난 2월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부산 이전에 대한 '전보발령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며 맞서고 있는 상태다.
다만, 조기 대선을 앞둔 가운데 부산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산은의 부산 이전 공약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에선 산업은행 이전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부산상공회의소와 미래사회를준비하는시민공감은 지난 7일 '제2차 공공기관 이전의 시금석-한국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 전국 권역별 합동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날 안권욱 지방분권경남연대 공동대표는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7년 동안 지연되면서 지방의 위기는 더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출발·도화선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부산상공회의소가 주도한 한국산업은행법 개정 촉구 국민동의청원은 목표인 5만명을 조기 달성함에 따라 지난달 5일 정무위원회에 회부됐다.
산업은행 안팎에선 여권이 부산을 공략하고 있는 만큼 야권에서 부산이 아닌 타 지역으로의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에 노조 측에선 산업은행을 통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에 은행이 부산 이전 이슈에 매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준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많은 국민들이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AI, 반도체 등 미래 첨단 산업 육성을 꼽고 있고, 산업은행은 중화학공업, 수출산업 등 국가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본 경험이 있다"며 "하루 빨리 산업은행을 통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에 은행이 부산 이전 이슈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탄핵 인용으로 부산 이전에 제동이 걸린 만큼 대선 후보들이 국책은행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제대로 다시 생각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국가 금융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서울부터 세계적인 금융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며 "대구은행은 시중은행으로 전환하며 영업을 확장하고, 지방은행들도 수도권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기관 간 신속한 협업, 해외 거래처들과의 연계 등 금융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음 정부는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막무가내식 지방 이전이 아니라,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균형 발전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