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9일 토요일 낮 12시께. 북한으로부터 ‘김일성 주석이 전날 새벽 2시 사망했다’라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북핵 문제를 놓고 남북, 북·미 간 한창 대화를 이어가던 시기 벌어진 돌발 상황에 외교 당국은 초비상 경계 모드에 돌입했다.

외교부는 28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총 38만쪽 분량의 1994년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김일성 사망 직후 정황을 비롯해 북핵 관련 제3단계 북·미 고위급 회담 및 제네바 합의 등 내용이 담겼다.
주말 낮에 갑작스레 전해진 김일성의 사망 소식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전군에 특별 경계령을 내렸다.
외교 당국은 미국을 비롯한 각국 대사관에 ‘초긴급’ 전보를 발신했다.
해외 공관들은 일제히 비상 체제에 들어가 북한에 대한 정보와 각국 반응을 수집했다.
무엇보다 김일성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후계 권력 구도에 대한 관심이 컸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핵심부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이탈리아 나폴리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북·미는 제네바 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는데, 김일성 사망으로 연기됐다.
다만 당시 대화 의사가 강했던 북한은 미측에 제네바 대표단 체류를 요청하면서 ‘회담 재개를 희망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남북 역시 같은 달 25일 평양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으나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무산됐다.
한미 양국 당국자들이 나눈 대화도 30년 만에 공개돼 눈길을 끈다.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당일 스탠리 로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과 반기문 주미대사관 공사가 면담했는데, 이 자리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장례식 참석을 요청했으나 북측에 의해 거절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일에 대한 관심도 쏟아졌다.
당시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부위원장은 반 공사를 만나 사견을 전제로 "수년 내에 김정일 반대파가 김정일을 제거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 크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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