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애 같아 지도자로 부족한 것 같다.
”
1994년 7월 8일 북한을 46년 장기 통치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직후 세계 각국의 움직임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전망을 엿볼 수 있는 외교문서가 28일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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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전시실을 찾은 관람객들이 故 김일성-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뉴시스 |
당시 주요국 인사들과 접촉한 한국 외교관들이 보낸 문건을 보면 각국은 김일성이 북핵 협상이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정책이 지속될지 불안해했다.
당시 스탠리 로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반기문 주미대사관 공사와 면담에서 “김정일이 승계에 성공하더라도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하고 정통성이 결여돼있는 데다, 경제난 계속으로 일정 기간 이후 많은 도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면서 김정일이 핵 문제와 관련해 강경파라면서 “북한이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부통령을 지냈던 월터 먼데일 주일미국대사는 김정일에 대해 “약간 멍청하고(GOOFY) 어린애 같아(CHILDISH) 지도자로는 부족한 것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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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당시 주루마니아대사가 김일성 북한 주석 사망 관련 보고를 한 비밀문서. 외교부 제공 |
러시아 당국자들도 북한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예상했다.
평양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러시아 학자는 “김정일 체제가 6개월 정도 지나면 군부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개입할 것”이라며 “길어야 김정일은 96년 말 정도까지만 집권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김정일 체제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덩샤오핑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문제를 담당하는 중국 외교부 인사는 “김일성은 과거 중국 방문 시 덩샤오핑에게 아들 김정일 문제를 부탁(托孤·탁고)해 두었기 때문에, 덩샤오핑이 생존해 있는 한 중국 정부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북한이 공식적으로 밝힌 김일성 사망 원인은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였는데, 중국 일부 당국자들은 핵 문제 및 남북 정상회담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심장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최고지도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각국 소재 북한대사관의 혼란스러운 모습도 외교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주베트남 북한대사관은 베트남 한 언론사가 김일성 사망 이튿날 관련 소식을 보도하자 ‘터무니없는 날조’라며 항의했다.
이 매체가 해당 소식을 전하는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기사를 내밀고서야 상황은 진정됐다.
외교부는 이날 이런 내용이 포함된 ‘30년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 2506권, 38만여 쪽을 일반에 공개했다.
정부는 국민 알 권리 보장과 외교 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를 매년 공개하고 있다.
올해 공개된 부분은 1994년도 문서가 중심으로, 김일성 사망과 함께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문 체결, 한국의 미국 에너지부(DOE) ‘특별관리대상’ 제외 등 내용이 담겼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사전 예약을 통해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
6월 이후에는 ‘공개외교문서 열람 청구시스템’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다.
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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