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대행의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
여야 첨예한 공방 불가피…개헌 동력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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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으로 2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명했다. 권한대행의 이같은 인사권 행사는 전례가 없다. 한 대행은 헌재의 완결성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스스로 부정한지 오래다. /임영무 기자 |
[더팩트ㅣ신진환·김정수 기자] 조기 대선 정국에서 야권이 발칵 뒤집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대통령 몫'으로 2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명하면서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이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차기 대권 경쟁과 맞물려 여야 간 대치는 한층 격렬해질 것으로 보여 개헌 동력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한 대행에게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명백한 월권행위이며 위헌적 권한 행사라고 판단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더팩트>와 만나 "(헌재) 알박기 의도가 너무 명백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헌재에 권한쟁의심판과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한 대행은 기습적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8일 문형배 헌재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자로 이 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마용주 대법관 후보자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도 각각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다. 9명으로 구성되는 헌법재판관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해 선출한다. 이를 두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좌편향성을 문제 삼아 반대해 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에는 유감을 나타냈지만, 헌법재판관 2명에 대한 지명에는 '용단'이라고 평가했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전무한 일이다. 때문에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그 여파로 헌법재판관 지명을 두고 여야의 첨예한 공방이 불가피한 만큼 개헌에 대한 기대감도 떨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87년 체제를 종식하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에 적극적이지만, 야당과는 온도 차가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도 개헌은 중요하지만 내란 극복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이 대표의 발언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 처장이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경찰에 피의자로 입건돼 조사받았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의 권한 자체는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사실상 상실됐다. 권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출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이 비선출직이자 임명직인 국무총리에게 오롯이 주어진다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헌정회복을 위한 헌법학자회의'는 한 대행의 후보자 지명은 월권적·위헌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 대행은 대통령 직무를 대신하고 있기에 권한 행사도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대통령의 권한은 '국민의 선출'이라는 정당성에서 비롯된다. '비선출직'이자 '임명직'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완전히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권한대행에게 주어질 권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한 대행은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를 지명한 이유로 경제부총리의 탄핵 가능성과 경찰청장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꼽았다. 헌재 결원 사태가 반복된다면 혼란이 재발할 수 있기에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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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행의 결정에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치적 함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공교롭게도 이 처장(사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한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의 수사 대상인 것으로 전해진다. /배정한 기자 |
하지만 한 대행의 '헌재 완결성'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한 대행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마은혁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끝까지 임명하지 않았다. 결국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는 헌재 8인 체제에서 이뤄졌다.
한 대행이 이 처장과 함 부장판사를 지명하지 않더라도 마 재판관을 임명한 만큼 헌재는 7인 체제로 작동이 가능하기도 하다. 헌재법 제23조 1항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명시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한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박한철 헌재소장이 퇴임했지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황 대행은 박 전 대통령 파면 직후 대법원장 몫이었던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했을 뿐이다.
이렇다 보니 한 대행의 결정에 '정치적 함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된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윤 전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사법연수원 동기로 40년 지기다.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법무부로부터 정직 2개월 징계를 받고 취소소송을 냈을 때 변호를 맡았다. 윤 전 대통령 장모 등 가족 사건 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이 처장과 윤 전 대통령의 인연은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처장은 비상계엄 직후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안전가옥)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과 회동해 논란이 됐다. 그는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등 증거인멸 의혹도 받고 있다. 현재 이 처장은 비상계엄과 관련한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수사 대상인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