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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폭우 속 5시간 쉼없이 쓰레기와 씨름한 ‘강남순환도로 의인’…빗물 역류에 배수구 청소

세계일보 기사제공: 2022-08-11 16:38:51

화제의 주인공은 국악 연주자 최모씨
지난 8일 오후 강남순환도로 진입 후 물에 떠다니는 가드레일 치우고 빗물 막힌 지점 발견해 새벽까지 쓰레기 제거
6차선 오가며 수신호로 교통 통제하기도
13년째 서초구 봉사센터 소속돼 연주 선행…“시민 일원으로 너무 뿌듯하다”

지난 8일 서울 강남순환도로 배수구에서 국악 연주자 최모씨가 빼낸 쓰레기. 최씨 제공

서울 강남순환도로에서 폭우로 막힌 배수로를 새벽까지 5시간에 걸쳐 청소한 ‘시민 영웅’이 당시 상황을 지난 9일 본지에 전해왔다.

자신을 국악 연주자라고 밝힌 최모씨(43)는 지난 8일 강남순환도로에서 집중 호우로 쓰레기가 적치된 배수구를 청소해 도로의 물을 빼내는 한편 정체된 차들을 수신호로 안내했다고 알려왔다.

최씨는 당시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운영하는 음악 스튜디오의 누수 피해를 점검하고자 오후 9시쯤 자차로 봉천동 자택을 출발해 강남순환도로로 진입했다고 한다.

그가 진입했던 6차선 도로는 1∼3차선이 지하차도로 하행하는 길이었고, 4∼6차선은 지상으로 이어진다.
최씨는 당시 3차선에 있었다.

톨게이트를 통과하기 전부터 정체가 심했는데, 이를 빠져나와 전진하던 최씨는 오르막 경사가 시작되는 약 500m 전방 도로에서 물이 차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차 앞으로 100여대가 전혀 움직이지 못한 채 긴 줄로 멈춰 서있었고, 주변에는 차오른 물 위로 플라스틱 재질의 공사용 가드레일들이 떠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최씨에 따르면 당시 도로에 흐르던 물은 타이어의 절반 지점까지 차올랐다.

그는 여기저기 흩어진 가드레일이 통행을 크게 방해하고 있다고 보고 9시30분쯤 차에서 내려 직접 수거해 3·4차선 사이 중앙분리대에 걸쳐놓았다.

최씨가 정리해준 덕분에 장애물이 없어진 차선으로 차들이 진입했고, 그는 물이 왜 차올랐을까 궁금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윽고 3·4차선 중앙분리대에 인접한 배수구가 쓰레기로 막혀 빗물이 역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하차도와 지상 차도를 가르는 경계 한복판에서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배수구 인근 쓰레기만 치우면 물이 금방 빠질 줄 알았는데, 어림없는 일이었어요. 빗물이 쓰레기 틈으로 빠지는 것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양이 훨씬 많았거든요.”

최씨는 급한 마음에 직접 배수구에 손을 넣어 쓰레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나뭇조각, 비닐 등 자연과 인간이 함께 ‘선사’한 쓰레기를 치우는 동안에도 도로의 차들은 여전히 뒤엉켜있었다.

최씨는 먼저 교통정리부터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가드레일을 치워 확보된 차선에 차들이 마구 진입해 정체가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씨는 도로 여기저기를 오가며 차선별 진입 우선순위를 정해 교통 경찰관처럼 수신호로 지시(?)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운전자들이 협조해준 덕분에 1대씩 차례로 나아가던 차들은 그제야 느리게나마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 최씨는 빗물이 허벅지 부분까지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고, 배수구로 다시 뛰어가 청소를 재개했다.
흙더미와 화분, 부탄가스 캔 등 각종 쓰레기가 한켠에 높이 쌓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중앙분리대 턱에 걸쳐놓았던 가드레일은 그 사이 불어난 빗물로 떠다니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다시 급하게 차들 사이를 헤집고 가드레일을 도로 바깥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가드레일이 10개는 됐던 것 같아요. 전부 도로에서 빼내야 했습니다.
혹시나 다른 차가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옮겼습니다.
”

그 시점 그의 승용차 타이어는 빗물에 완전히 잠겨버렸다.
도로에서 가드레일을 모두 제거한 최씨는 그런데도 또다시 배수로 청소를 시작했다.
이때 신고 있던 신발이 빗물에 떠내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2시간을 더해 그는 드디어 쓰레기를 전부 치우는 데 성공했다.
다리를 완전히 덮었던 빗물은 배수구로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6차선 도로를 오가면서 다리 힘이 완전히 빠졌어요. 허리도 아팠고요.”

지난 8일 국악 연주자 최모씨가 서울 강남순환도로 배수구에서 꺼낸 쓰레기와 가드레일. 최씨 제공

쓰레기를 모두 치운 최씨가 차로 돌아가려는 순간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요청한 최씨에게 그 운전자는 가방에서 이온음료를 꺼내 건넸다.

최씨가 음료를 마시는 사이 도로의 빗물은 완전히 빠져나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차에 타 시계를 본 최씨는 5시간이 흘렀음을 알아차렸다.
시침은 자정을 넘겨 이튿날 오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가 없이 수시간 동안 쓰레기와 씨름한 이유를 묻자 최씨는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보면 참지 못한다”며 “봉사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는 2010년부터 서초구 자원봉사센터 소속으로 서울 일대에서 무료 국악공연을 진행하는 한편 센터에서 개최하는 다른 봉사활동에도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청소 과정에서 팔과 다리의 여러 부위에 상처를 입었다.
연주자인 만큼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남다른 뿌듯함을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 시민으로서 다른 이에게 큰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너무 보람되고 기쁩니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돼도 같은 행동을 할 것입니다.
”

국악 연주자 최모씨가 지난 8일 서울 강남순환도로에서 청소한 뒤 빗물이 수월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배수구의 모습. 최씨 제공

지난 8일 서울 강남순환도로 배수구 청소 후 국악 연주자 최모씨 다리에 남은 상처. 최씨 제공

정재우 온라인 뉴스 기자 wamp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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