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문화재청과 전통재료를 사용하기로 합의해놓고 몰래 화학재료를 사용한 홍창원(67) 단청장이 정부에 억대 배상금을 물게 됐다.
2008년 화재로 타버린 숭례문은 5년만인 2013년 복구됐는데, 단청 곳곳에서 박락(깎여 떨어짐) 현상이 발생해 부실공사 논란이 일었다.
16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19부(재판장 이민수)는 정부가 홍 단청장과 제자 한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난 10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판결이 확정되면 이들은 정부에 약 9억4500만원의 손해배상금과 지연이자를 더한 14억원가량을 물어줘야 한다.
홍 단청장은 2012년 8월∼2013년 2월 숭례문 단청 복원 공사를 맡아 진행했다.
문화재청과 단청 복원에 쓰일 안료와 아교는 전통재료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홍 단청장은 전통재료만으로 단청을 시공한 경험이 없었고, 실제 전통재료를 사용한 시공에서 변색·박락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화학재료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홍 단청장은 주로 새벽 시간 자신의 사무실에서 몰래 화학재료를 섞은 혼합재료를 만들었고, 기술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혼합재료를 사용해 단청 공사를 마쳤다.
결국 단청 공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2013년 초부터 단청 곳곳이 벗겨지면서 부실공사 논란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다음해 “단청 박락의 주요 원인이 접착력이 약한 아교층과 접착력이 강한 화학층이 덧칠돼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에 정부는 홍 단청장 등을 상대로 단청 재시공 비용인 11억8000만원가량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홍 단청장 측은 “화학 재료 사용으로 박락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법원도 이들의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전통재료를 사용한 구간에서도 단청의 균열·박락이 발생한 점 등을 고려하면 혼합재료로 인해 박락이 발생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다만 “정부와 협의한 방식에 반해 혼합재료를 사용한 것은 불법행위”라며 손해배상 책임도 일부 인정했다.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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