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허준이 교수, 모교 서울대 졸업식 축사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질문에
오늘부터의 매일매일이 대답
취업·결혼·승진·은퇴 준비 거쳐
그럴듯한 사망에 산만하지 않길”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수상도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바랍니다.
”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39) 프린스턴대 교수가 29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6회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후배들에게 축사를 했다.
허 교수는 졸업생들에게 “응원한다”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바란다”고 담담하게 조언했다.
 | 올해 한국계 수학자 중 처음으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교수(오른쪽)가 2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증서를 받은 뒤 오세정 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허 교수는 이날 졸업식 축사에서 “그럴듯한 1인실서 사망하는 준비에 정신 팔리지 말고, 무례·혐오 등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라”는 당부를 전했다.
뉴스1 |
허 교수는 지난달 여러 수학 난제를 증명한 공을 인정받아 수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그는 2002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해 수리과학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07년 서울대를 졸업했다.
허 교수는 이날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도 받았다.
이날 청바지에 티셔츠, 재킷을 입고 연단에 선 허 교수는 “학위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한다”며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이라며 유머스럽게 축사를 시작했다.
그는 이어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라며 “십 몇 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허 교수는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이라며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준다”며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이날 민주화 운동 당시 사망 등의 이유로 제적돼 졸업하지 못한 7명의 민주화 열사도 명예졸업자로 선정해 유가족에게 명예졸업증서를 전달했다.
김태훈(경제학과 78학번), 김학묵(사회학과 78학번), 박혜정(국문학과 83학번), 송종호(서어서문학과 87학번), 이동수(원예학과 83학번), 이진래(제약학과 79학번), 황정하(토목공학과 80학번)가 주인공이다.
학위수여식은 2019년 8월 이후 처음으로 대면으로 열렸다.
학사 959명과 석사 1041명, 박사 700명 등 총 2700명이 학위를 받았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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