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피해 전통시장 우울한 한가위
손님 받기 위해 부랴부랴 문 열어
물가 올라 물건·재료비 부담도 커
“피해 큰데 지원금 200만원은 적어”
상인, 지급도 오래 걸려 불만 토로
“복구를 다 하지 못했지만 추석 때문에 급하게 가게 문을 열었어요.”
지난 26일 오후 5시쯤 찾은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곡식과 약재를 파는 황모(86)씨가 인삼·방아잎 등 약재를 정리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씨에게 지난 8일은 악몽과도 같았다.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이날, 황씨의 가게는 그의 키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가게 안팎에 있던 각종 약재는 모두 물에 떠내려가거나 잠겼다.
토사가 뒤섞이고 물에 젖은 약재들은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카드 단말기부터 약재를 보관하던 대형 냉장고도 모두 고장 났다.
피해 금액은 약 8000만원. 다시 구매한 물품값을 포함하면 피해액은 더 늘어난다.
 | 당정이 최근 폭우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에 대해 최대 4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 28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의 폭우 피해로 문을 닫은 한 상점. 연합뉴스 |
가게 안에 고인 빗물과 토사를 거둬내는 데만 2주가 넘게 걸렸다.
대목인 추석이 다가오면서 황씨는 초조함만 늘었다.
급하게 약재와 냉장고 등을 구매해 이틀 전 가게를 다시 열었지만, 실내엔 아직도 토사가 일부 남아 있다.
황씨는 “노점상을 해서 평생 번 돈으로 작은 가게를 빌려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폭우로 완전히 망했다”며 “구에서 지원금을 준다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라고 토로했다.
폭우 피해 이후 20여일이 지났지만 시장 상인 가운데 일부는 추석을 앞둔 지금도 복구 작업을 끝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천정부지로 치솟은 고물가 때문에 상인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정부와 지자체가 수해 피해 상인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급 시기가 더디고 규모도 작다는 토로도 이어진다.
29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전통시장의 94.3%가 정상영업이 가능한 수준으로 복구됐다.
그러나 성대전통시장, 관악신사시장, 영동전통시장 등은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아 정상영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황씨가 있는 남성사계시장도 마찬가지다.
남성사계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40대 김모씨는 90%만 복구를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복구 작업에 매진하다가 지난 23일 가게 문을 다시 열고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고기를 비롯해 값비싼 냉동고 여러 대가 물에 잠겨 발생한 피해 금액은 약 1억원이다.
한동안 가게 문을 열지 못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액은 더 크다.
김씨는 “명절을 대비해 대량으로 구매했던 고기를 전부 폐기했다”며 “냉동고 등 새롭게 구매한 것을 포함하면 피해 정도는 가늠도 안 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 지난 28일 폭우 피해로 폐업 준비중인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의 한 노래방. 연합뉴스 |
고물가는 상인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폐기한 물건과 재료들을 대체하기 위해 새롭게 구매해야 하는데 비용이 껑충 뛰었다.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생선과 채소들을 모두 새로 구매했는데, 폭염과 폭우를 지나며 재료값이 대부분 30% 가까이 올라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는 판매가 인상으로 이어져 시장을 찾은 시민 중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장을 보러 온 일부 시민들은 과일과 채소 등의 가격을 보고 “너무 비싸 깜짝 놀랐다”면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한 시민은 “추석 때 고향에 가기 전에 미리 음식과 선물을 준비하려고 왔는데 값이 비싸 계획보다 적게 구매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지자체 등이 약속한 지원금 지급이 더디고 규모가 작다고 토로했다.
남성사계시장의 상인들 역시 아직 지원금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서울 동작구에서 점포당 200만원 상당의 긴급복구비를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지급이 아직 이뤄지지 않아 상인들 사이에서는 ‘긴급’이라는 의미가 무색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상인은 “지원금을 신청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아직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며 “수천만원의 피해를 입은 상인도 많은데 200만원은 너무 적다”고 말했다.
동작구청 관계자는 “아직 긴급복구비 지급 대상 선정을 마무리하고 있는 단계”라며 “추석 전에는 지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정부는 상인들에 대한 지원금 규모를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날 제3차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최근 폭우로 인해 피해를 본 상인들에게 최대 4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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