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선거 이대로 괜찮습니까
학교 신설·학생 평가방식 등 권한 막강
유권자들 학생 자녀 없으면 ‘무관심’
후보들도 정책보다 이름 알리기 몰두
단일화가 당락 가르는 변수가 되기도
교육계서도 ‘선거제 개편’ 개혁 1순위
개정안 10건 발의됐지만 대부분 폐기
일각, 선거공영제 도입·자격 강화 주장
“솔직히 누가 나오는지도 몰랐어요.”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A(33)씨는 지난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소에서 교육감 투표용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정당과 기호가 표시되는 다른 투표용지와 달리 교육감 투표용지엔 후보자 이름만 있었다.
투표장에서 ‘뒤늦은 고민’이 시작됐지만, 평소 교육정책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A씨에겐 후보의 이름조차 낯설었다.
A씨는 “그냥 아무한테나 도장을 찍고 나왔는데 ‘이렇게 막 뽑아도 되나’란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묻지마 선거.’ 교육감 선거의 또 다른 이름이다.
투표장에 가서야 후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A씨뿐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렇게나’ 찍은 한 표의 영향은 크다.
교육감은 학교 신설·폐지권, 교직원 인사권, 학생 평가방식 등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
올해 전국 시·도교육청에 편성된 예산은 80조원이 넘는다.
교육감을 ‘교육 대통령’이라 부르는 이유다.
교육감 선거제도 개편은 교육계에서 손꼽히는 개혁 과제다.
개편 방식에는 여러 이견이 있지만, 현재의 선거가 적절치 않다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단일화하면 이긴다’… 공약 실종 선거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교육감은 과거 임명제였으나 1991년 간접선거가 도입됐고, 2007년 부산에서 첫 직접선거가 시행됐다.
2010년부터는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을 함께 뽑고 있다.
현재 교육감 선거는 정당 개입을 차단해 교육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크다.
우선 유권자의 관심이 적다는 것이 문제다.
자녀가 학령기인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교육정책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감이 누군지에 따라 해당 지역 학생의 등하교 시간, 시험 실시 여부가 바뀌는 등 큰 영향을 받지만, 정작 투표는 교육정책에 관심이 적은 이들이 하는 상황이다.
유권자 관심이 적다 보니 후보 사이에선 교육정책보다는 ‘이름’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 되고, 선거 때마다 진보·보수 진영의 단일화가 결과를 가르는 변수가 된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전국 17곳 중 진보·보수 후보가 일대일로 맞붙은 곳은 7곳뿐이다.
서울·강원·세종은 각각 6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서울의 경우 당선된 조희연 교육감의 득표율(38.1%)은 보수 성향 조전혁(23.5%)·박선영(23.1%)·조영달(6.6%) 후보의 득표율 합보다 15%포인트가량 적다.
마찬가지로 진보 성향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한 세종·충남도 보수 성향 2·3위 후보의 득표율 합이 당선자 득표율보다 많았다.
단일화가 됐다면 당선자가 바뀌었을 수 있었던 셈이다.
 | | 사진=연합뉴스 |
결국 선거 때마다 공약이 아닌 각 진영의 단일화가 가장 큰 이슈가 된다.
단일화 갈등 과정에서 피로를 느낀 유권자는 선거에 더욱 관심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중앙선관위가 2018년 지방선거 후 공개한 유권자 조사에 따르면 교육감 선거에 관심 있다는 응답은 43.6%에 불과했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선거 무효표(90만3000표)는 시·도지사 무효표(35만표·1.6%)의 2.5배가 넘는다.
누굴 뽑을지 몰라 투표를 포기한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투표를 한 이들도 그 후보가 교육정책을 잘 이끌 것이라 생각해 뽑았는지 미지수다.
그냥 찍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며 “교육감 선거는 지방자치제 취지를 못 살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묻지마 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막대하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올해 지방선거에서 교육감 후보 1인당 평균 지출액은 10억6300만원으로, 시·도지사 후보(8억9300만원)보다 20% 가까이 많았다.
김성천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은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이 주최한 ‘교육감 선거제도 개편 정책 토론회’에서 “전문성, 리더십 등이 탁월한 후보가 있어도 비용 부담 위험을 안고 출마하기 쉽지 않다”며 “정당이 관여할 수 없어 조직·단체 지원 없이 출마는 불가능에 가깝고, 진보든 보수든 후보 단일화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현재 방식은 문제… 개선 목소리↑
대안으로는 시·도지사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시·도지사 후보가 교육감 후보를 지명하는 식으로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정부, 지자체장과 교육감 이념이 다를 경우 정책이 상충할 수 있다”며 “정권이 바뀌면 교육부 장관이 바뀌는 것처럼 교육감도 지자체장과 함께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 본다”고 말했다.
다만 러닝메이트제는 교육감 선거가 정당 정치에 매몰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교육감 선거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러닝메이트제에는 부정적이어서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직선제로 바뀐 후 진보 진영 후보가 많이 당선된 영향도 있다.
실제 교육감 선거법 개정안은 올해 2건 등 10건가량 발의됐으나 대부분 국회 상임위에서 폐기됐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국민 관심·참여를 높이기 위해 제도 보완은 필요하지만 교육자치를 허무는 방안이 돼선 안 된다”며 “교육감 직선제 정신을 계승하는 바탕 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육감 선거에 한해 유권자를 만 16세 이상 학생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러닝메이트제 도입 시 교육자치 훼손이 우려된다”며 “교육정책 대상이면서 주체인 학생이 유권자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경기교사노동조합 황유진 정책연구국장은 “선거공영제를 도입해 선거비용 문제를 개선하고, 교육감 자격은 경력을 15년 이상(현행 3년)으로 높이고 유·초·중등 교육으로 한정해 무분별한 입후보를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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