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국립대병원, ‘빅5’급 육성 추진
그동안 ‘기타 공공기관’ 분류 규제받아
필수의료에 한해 예외 규정 등 검토
중환자·응급실 병상·인력 투자 확대
우수 종합병원도 육성… 상급 쏠림 개선
심화하는 지역의료 불균형 해소 총력
“인력 유출 막을 구체안 없인 공염불
실효성 있는 정책 빠른 시행 중요” 지적
정부가 국립대병원 인건비·정원 규제를 완화하고 집중 투자 계획을 밝힌 건 심화하는 지역의료 불균형을 막기 위해서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의료인력이 몰리고 수도권과 지방병원 간 인력·시설 격차는 벌어지는 탓에 환자 쏠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이는 지역의료를 무너뜨리는 악순환이 된다.
지역 거점병원을 육성해 붕괴 위기인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는 구상이다.
빠져나가는 의사들을 붙잡을 구체적인 방안이 없으면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상경 뒤 서울 시내 대형 종합병원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와 이용객들이 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
보건복지부가 19일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은 14개 시·도의 국립대병원 17곳을 수도권 ‘빅5’ 병원 수준으로 올리는 게 골자다.
지방 환자들이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을 가지 않아도 최종치료를 받을 수 있게 국립대병원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립대병원 역량을 수도권 대형병원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높여 지역에서 중증질환 치료가 완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의료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방 환자들은 버스와 KTX를 타고 먼 거리를 오가며 수도권 병원을 찾는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병원 근처 환자용 고시텔에 이른바 ‘환자방’을 구해 지내기도 한다.
지난해 서울과 경기,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을 찾은 비수도권 환자는 97만명을 넘었고, 이들이 쓴 치료비는 2조9000억원에 달했다.
환자 쏠림 현상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수도권 병상은 앞으로 5∼6년 내 7900개가 늘어난다.
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 등 수도권 대형병원 9곳은 2029년까지 수도권에 대형 분원을 11개 짓는다.
수도권 전체 병상 3만8000개의 20%가 넘는 병상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
의료계는 수도권 대형병원 분원에 지방병원 의사들이 올 것으로 본다.
필요한 의사 수만 3000명 정도일 전망이다.
지역 의료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거점병원을 육성하고 지역 병원 협력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 중심에 국립대병원이 있다.
국립대병원은 교육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 묶여 각종 규제를 받고 있다.
매년 재정 당국과 정원 조정을 협의해야 하고, 인건비는 정해진 인상률 상한(올해 1.7%) 안에서 책정해야 한다.
전국의 국립대병원은 지난해 4799명 의사 증원을 요청했으나 1735명(36.9%)만 승인됐다.
이에 정부는 필수의료에 한해 예외 규정을 두거나 ‘기타 공공기관’에서 제외하는 방안까지 모두 검토하기로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 당시 대학병원마다 8∼10명 정도 전임교수를 늘린 적이 있는데 지역 필수의료 중추로 육성하려면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 국립대병원 전임교수 자리가 늘어나면 의사의 장기근속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복지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적정 교수 인원 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국립대병원에 대한 투자도 확대한다.
지역 필수의료 자원 관리 등을 주도할 권한과 책임도 강화한다.
중환자실과 응급실 병상, 인력 확보를 위한 비용을 지원하고,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등 필수의료센터에 대한 보상도 늘린다.
국립대병원이 없는 인천은 길병원을, 울산은 울산대병원을 권역 책임의료기관으로 지정한다.
지역 병·의원 역할도 재정립한다.
전국 70개 중진료권별로 우수 종합병원(2차 병원)을 육성해 필수의료 수술·응급 공백과 상급병원 쏠림을 막는다.
만성질환 위주인 1자 의료기관 지원은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 |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의 의료진의 모습. 뉴스1 |
이번 대책은 올해 정부가 추진해온 소아암 거점병원 육성,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강화 등 필수의료 관련 정책과 비슷하다.
한정된 의료인력, 지역 격차가 있는 상황에선 거점병원 육성·지역 병원 협력체계 구축이 사실상 유일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줄줄이 개원가로 빠지고 있는 현장에선 정부 지원을 체감하기 어렵다고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정책의 빠른 시행과 인력을 붙잡을 유인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소아혈액종양학회 보험이사인 이준아 국립암센터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정부의 의지는 환영하지만 앞서 발표한 어린이 공공전문센터 적자 사후보상 사업 등도 현장에선 체감하기 어렵다”며 “골든타임이 지나가는데 실효성 있는 정책이 현장에 적용되는 게 너무 느리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필수의료 인력이 지역 병원에 남을 수 있게 의료사고 부담을 줄여주고 보상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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