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8월 16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들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세사기 내부 심의기준·회의록 등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늘을 날고 싶은 청춘이었다.
91년생 최지수 씨의 꿈은 전세사기 피해자가 아니라 조종사였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취업난과 주거난이 맞물린 현실은 빛나던 청춘의 꿈에 커다란 바윗덩이를 매달았다.
최지수 씨가 쓴 ‘전세지옥’(세종)은 1991년생 청년이 전세사기를 당한 후 겪은 820간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똑같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본인이 했던 실수를 구체적으로 담았다고 했다.
저자 최 씨는 대학 졸업 후 천안에 있는 한 회사에 취업했다.
급여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집과 멀었고,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곳이었다.
그는 조종사라는 꿈을 이루고자 잠시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견뎠다.
동기들이 차를 살 때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녹물이 나오고 바퀴벌레가 나오는 사옥을 벗어나고자 그는 대출 받아 전셋집을 마련하기로 했다.
매달 30여만원이 들어가는 월세보다는 대출받을 수 있는 전세가 훨씬 나아 보였다.
2020년 여름, 부동산 가격이 최고점을 찍은 후 내리막으로 치닫기 직전이었다.
그렇게 그의 꿈은 전세 사기에 저당잡혔다.
그가 선택한 전셋집은 전망이 좋고 회사에서 가까웠다.
건물주가 제2금융권에서 받은 근저당 대출 33억 원이 다소 꺼림칙했지만, 부동산중개소 소장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발행하는 1억원짜리 공제증서를 건네주며 그를 안심시켰다.
주변 빌라들이 죄다 60~70%는 대출을 끼고 있다고도 했다.
 | | 세종 제공 |
최 씨는 “내 보증금은 1억원을 넘지 않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청년버팀목전세자금대출 4천640만원을 받았다.
대출 금리는 2%를 넘지 않았다.
직장 일이 힘들었지만, 퇴근해 안락한 방에 누워있으면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전세 대출을 받은 1년 후, 해외 취업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헝가리에서 돈을 좀 더 벌면 조종사에 도전할 수 있다고 그는 낙관했다.
하지만 불행은 소리 없이 턱 밑까지 다가와있었다.
2021년 7월, 그는 출입문에 붙은 경매통지서를 발견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자포자기한 채 헝가리로 취업했지만 생각보다 처우가 좋지 않아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으로 물가가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전세 만기가 도래하자 그는 모아둔 돈과 카드론을 받아 대출을 갚았다.
이자가 10%를 넘는 카드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서른이 넘었지만, 모아둔 돈은 없고, 빚은 쌓여갔으며 꿈은 멀어져갔다.
연로한 부모님에게 손을 빌릴 염치도 없었다.
결국 그는 원양어선을 타기로 결심했다.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목돈을 모으려면 현실적으로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조종사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자동차, 연애, 결혼을 포기했다.
하지만 전세 사기를 당한 지금도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할지언정 꿈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
서다은 온라인 뉴스 기자 dad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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