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美’ 대표하는 단풍…색 흐리고 잎 메말라
늦어진 가을에 늦더위까지…단풍 들 시간 짧았다
수목원 “기후변화 인과관계 증명 안 돼…지켜봐야”
경기 성남시에 거주하는 김모(70)씨는 6일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전북 정읍 내장산을 찾았다.
단풍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날 절정이라던 내장산 단풍은 김씨에게 실망만 안겼다.
빨갛고, 노랗고, 풍성한 예전 절경이 아니었다.
입구 나무는 아직 단풍이 다 들지 않아 초록빛이 보였고, 단풍 색은 탁했다.
잎은 어딘가 메말라 보였다.
계곡 쪽 단풍은 비교적 선명했지만 그마저도 전날부터 내린 비와 강풍에 절반은 떨어지고 없었다.
김씨는 “수십년간 매년 단풍을 보러 내장산을 찾고 있는데 이렇게 실망스러운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단풍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다.
그런데 올해 단풍은 유난히 ‘애매’했다.
10월 중순 설악산에서 시작되어 11월 초 남부지방까지 색색으로 물들어야 했지만 ‘절정’으로 예측된 시기에도 단풍이 충분히 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가을 단풍을 즐기면서도 ‘예전만 못하다’며 아쉬워했다.
이런 현상이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앞으로도 예전만큼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 단풍은 왜 늦었고, 선명하지 않았는지, 앞으로 정말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 힘들 것인지 등 단풍에 관한 궁금증을 국립수목원 정지영 연구사와 문답을 통해 풀어본다.
Q. 올해 단풍은 왜 제대로 들지 않았나?
A. 기온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무는 일교차가 크고 최저기온이 5도 이하인 날이 지속하면 추위에 대비해 엽록소를 줄이고 붉은색, 노란색 색소를 발현한다.
그런데 올해는 9월까지 늦더위가 지속하면서 일교차 큰 날씨, 즉 가을이 늦게 찾아왔다.
게다가 최근엔 갑자기 초여름에 버금가는 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추웠다가 따뜻해지니 일부 지역에선 계절을 착각한 진달래꽃이 피기도 했다.
결국 나무도 생육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았고, 색소 발현이 어정쩡한 상태가 되어 선명한 단풍이 들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Q. 올해 단풍은 끝났나? 초록 잎이 아직 많은데?
A.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관찰 결과 지난 주말 내린 비와 강풍으로 대부분 잎이 떨어졌다.
곧 기온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나무가 잎을 떨어뜨린다.
겨울나기를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야 하는데, 광합성은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일부러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따라서 단풍이 계속 물들기는 어렵다.
Q. 단풍이 선명하게 들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A. 일교차가 큰 날씨가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나무가 달라진 기온을 인지하고 겨울 준비에 들어가면서 단풍이 든다.
햇빛은 많이 받아야 단풍 색이 선명해진다.
낮에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아침저녁 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계곡 단풍이 색이 고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강수량도 단풍에 영향을 미친다.
참나무류는 원래 마르면서 갈색이 되어 떨어지지만, 단풍나무는 그렇지 않다.
올해는 단풍나무 잎도 다소 메말라 보이는 경향이 관찰됐다.
강수량이 부족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강수량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나무가 숨쉬기 어려워 단풍 색이 선명하지 않을 수 있다.
Q. 단풍 드는 양상의 변화를 체감하나?
A. 수목원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선배 직원이 “갈수록 선명도가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고 한다.
여러 기후 조건이 단풍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수목원과 전국 지자체 운영 수목원이 협력해 지속해서 모니터링 하고 있다.
기온과 강수량 변화를 확인하고 색상 변화를 사진 찍어 관찰한다.
일단 기온과는 확실히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지난 6일 예측보다 늦어진 단풍 절정기를 맞은 전북 정읍 내장산. 단풍이 다 들지 않아 푸른 잎이 많이 보이고 색이 선명하지 않은 데다 전날 내린 비로 잎이 절반은 떨어진 모습이다.
독자 제공 |
Q. 기후변화 때문에 앞으로 아름다운 단풍 보기가 어려워진다는데?
A.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단풍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엘니뇨·라니냐 주기 때문인지 뚜렷하게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기온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지만, 식물들이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 단풍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다양하기 때문에 나무의 입지와 매년 달라지는 수분 조건, 광환경 등 요인에 따라 단풍은 선명해질 수도, 흐려질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예전만큼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 어렵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계속 변화를 지켜보며 관찰·연구할 필요가 있다.
김희원 기자?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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