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설문조사로 본 ‘주 52시간제’
48%, 근로시간 유연화 취지에 공감
주당 상한 근로시간 ‘60시간 이내’엔
근로자 75.3%·사업주 74.7% “적절”
경사노위 불참 선언 5개월 만에 ‘컴백’
정부, 즉각 환영… “주도적 논의 기대”
우리 국민 절반가량은 현행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장시간 근로가 해소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업·직종별 수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국민 상당수가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려는 정부 개혁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지만, 일한 만큼 받는 임금체계와 근로자 휴식권 등을 선결과제로 본 것이다.
이런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주 52시간제의 틀에서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반쪽짜리’ 개혁이 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복귀로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논의에 기대감이 높아졌지만, 근로시간을 바라보는 노사의 입장 차 속에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셈법이 더해지며 추진 동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에서다.
고용노동부는 13일 근로시간에 관해 국민 60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지난 3월 ‘주 최대 69시간제’가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재검토에 착수하면서 국민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진행한 것이다.
 | |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출근하고 있는 모습. 최상수 기자 |
조사 결과 국민의 48.2%는 ‘현 근로시간 제도로 장시간 근로가 감소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제로 불리는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에 더해 연장근로를 ‘주 최대 12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상반기 내놓은 근로시간 개편안은 주 최대 12시간인 연장근로의 관리 단위를 기존의 주 단위에서 월·분기·연 단위로 확대해 유연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근로시간의 총량은 단위가 넓어질수록 제한을 두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줄어들지만, 특정 주에 몰아서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시간 근로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 ‘현 근로시간 제도는 업·직종별 다양한 수요가 반영되기 어렵다’는 문항에 근로자 44.2%, 사업주 44.6%, 국민 54.9%가 동의했다.
당초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했던 배경인 주 52시간제의 경직성에 대해 국민 과반이 동의한 것이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근로자 41.4%, 사업주 38.2%, 국민 46.4%가 동의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의 확대는 정부가 지난 3월 발표했던 근로시간 개편안의 핵심 내용이다.
설문조사에서 국민 상당수가 당초 정부의 개편 취지에 공감한 것인데, 정작 정부는 기존의 주 52시간제를 기반으로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 “주 5일 근무” 구인 광고 정부가 13일 현행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되 제조업, 생산직 등 일부 업종과 직종에 한해 ‘주 최대 60시간 이내’ 한도로 완화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구인 정보 게시판에 주 52시간을 기본으로 한 근로시간이 담긴 한 기업체의 구인 광고가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할 경우 주당 상한 근로시간으로 ‘60시간 이내’가 적절하다는 응답이 근로자는 75.3%, 사업주는 74.7%로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근로시간 개편안의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고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실제 정부가 추후 개편안에서 주당 상한 근로시간을 60시간으로 설정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이성희 고용부 차관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복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의 개편 방향에 대해선 비판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개선 방향에 동의할 수 없다”며 “법정 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이 아닌 주 40시간”이라고 지적했다.
주 52시간제를 기준으로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하는 정부 기조를 비판한 것이다.
민주노총 역시 “(설문조사에) 실노동시간 단축과 주 52시간제 안착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질문이 하나도 없다”며 “지난 3월 정부 발표 당시 법정 노동시간을 40시간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했음에도 노동시간 연장 개악을 추진하는 질문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 주도로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근로시간 개편에 대한 책임을 노사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근로시간 개편을 바라보는 노사의 이견이 현격하게 벌어진 상황에서 원만한 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신중론으로 일관할 경우 논의가 공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 차관은 “사회적 대화를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는 결정된 바가 없다”며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는 노사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요청에 화답… 노정 대화의 문 열려
한국노총이 13일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하면서 노사정 대화의 장이 다시 열리게 됐다.
근로시간 개편이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등 쟁점 현안에서 견해차가 여전하지만, 산적한 노동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양측이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국노총이 5개월 만에 ‘사회적 대화’ 복귀를 선언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노사정이 근로 시간 등 여러 현안을 조속히 함께 논의할 것을 기대한다”며 이 같은 입장을 전했다.
앞서 한국노총은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실의 요청에 대해 복귀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 “한국노총은 오랜 기간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의 한 축을 책임져온 노동계 대표 조직으로, 조속히 사회적 대화에 복귀해 근로시간 등 여러 현안을 함께 논의하길 기대한다”며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이 발언이 그동안 한국노총이 요구했던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이 응한 것으로 해석했다.
앞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한국노총의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하고 노동정책의 주체로서 한국노총의 존재를 인정하라”며 “이것 말고는 (사회적 대화 복귀의) 아무런 전제 조건도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김 위원장의 요구에 대통령실이 즉각 답하면서 양측이 화답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열린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노총은 지난 5월 전남 광양에서 농성 중이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경찰의 진압과 함께 구속되자, 6월7일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했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하면서 사회적 대화는 노동계가 없는 반쪽짜리가 됐다.
국내 노동계는 양대 노총으로 불리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양분하는 체제이지만, 민주노총이 1999년부터 사회적 대화에 불참하면서 사실상 한국노총이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계를 대표하고 있다.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복귀로 정부의 노동개혁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즉각 환영의 입장을 냈다.
고용노동부는 이정식 장관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그간 사회적 대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온 노동계 대표 조직인 한국노총의 결정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했고, 경사노위는 “한국노총이 근로시간 등 시급한 노동 현안들을 주도적으로 적극 논의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권구성·곽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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