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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부인과 두 딸 등 '세 모녀'가 구광모 현 LG그룹 회장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낸 '상속 분쟁' 소송에서 구씨 일가가 LG그룹 지배구조를 어떻게 유지해왔는지 공개되고 있다.
이번 재판은 구씨 일가가 50년 넘게 지켜온 LG가의 장자승계 원칙과 지배구조를 구본무 회장 부인 김영식 여사,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차녀 구연수씨 등 세 모녀가 흔들려고 하는 재판이다.

◆"구광모 장자승계 문서화"= 구씨 일가는 장자승계를 원칙으로 후계자를 정하고 지분을 모아준다.
첫 장자승계는 1970년 구자경 2대 회장 취임이었다.
그는 구인회 창업회장의 6형제 중 맏아들이다.
구인회 회장의 동생인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은 창업 멤버임을 내세워 형에게 경영권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기획조정실장으로 물러났다.
25년 뒤인 1995년 구자경 회장의 장자 구본무 회장이 역시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구본무 회장은 4대 회장이 될 외아들을 1994년 사고로 잃었다.
그는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구광모를 2004년 양자로 입적했다.
2015년 구본무 회장은 구광모 당시 상무와 함께 ㈜LG 자사주를 매입해 각각 지분 11.06%, 5.92%를 확보했다.
구본무 회장은 2017년 뇌종양 수술을 앞두고도 장자승계 원칙에 흔들림이 없었다.
이번 상속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하범종 LG경영지원부문장은 "그해 4월 뇌종양 판정을 받은 구본무 회장이 수술 직전 저를 따로 불러 구광모 회장에게 차기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를 A4용지 한 장에 문서화했고, 다음날 구본무 회장이 자필 서명했다"고 말했다.

하 사장은 또 "(구본무 회장이) '구광모가 장차 회장이 돼야 한다.
내 지분은 장자한테 가야 한다'는 취지로 늘 말했다"며 "구광모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주는 것에 대해 다른 자녀도 큰 반발 없이 합의했다"고 증언했다.
하 사장은 지주회사 LG의 재경팀장을 거쳐 LG최고재무책임자(CFO), 경영지원부문장을 맡는 등 LG그룹 총수 일가의 재산과 관련해 가장 밝은 인물이다.
구본무 회장 사후 상속 분할 협의 등을 총괄했다.

구씨 가문의 장자승계 원칙은 "다른 재벌가와 달리 LG에서 경영권 분쟁이 없던 이유"라는 긍정 평가와, "여성은 원천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 없게 했다"는 부정 평가를 함께 받는다.
구광모 회장 취임으로 LG 경영권에서 멀어진 세 모녀는 이를 흔들기 위해 재판에서 구자경 회장의 치매 병력을 거론하기도 했다.
대를 이은 장자승계 결정이 처음부터 정상적인 판단력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전략이다.
세 모녀 측이 선대회장들의 병력까지 언급할 정도로 LG가 장자승계 원칙이 이번 상속 분쟁 재판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경영재산·개인재산 성격 다툼 = LG그룹 지배권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계열사의 경영까지 참여할 수 있는 지주회사 ㈜LG의 지분이다.
2003년 LG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구본무 회장은 지배구조를 개편한 후 오너 일가의 지분을 지주회사로 모았다.
현재 ㈜LG의 지분은 구광모 회장 외에 구본준 LX그룹 회장, 구본식 LT그룹 회장, 구본길 LF그룹 회장 등 구씨 일가 '주주단'이 40% 이상 보유했다.
'주주단'이라는 용어는 재판정에서 여러 번 나왔다.
즉, 현재 LG그룹 지배권은 구광모 회장을 대표자로 세운 구씨 일가 공동 소유인 것이다.

이번 상속 분쟁의 쟁점은 구본무 회장이 보유했던 ㈜LG 지분의 성격이 무엇이냐이다.
세 모녀는 이 지분이 구본무 회장의 '개인재산'이라고 주장하고, 구광모 회장 측은 '경영재산'이라고 주장한다.
LG그룹에서 '경영재산'은 그룹 지배권 유지를 위한 오너지분을 지칭한다.
즉, '구씨 일가가 그룹 공동지배를 위해 각자의 권리는 행사하지 않기로 하고 지주사에 맡겨 놓은 지분'이다.
'개인재산'은 오너 일가가 사적으로 처분 가능한 지분 및 기타 자산이다.

㈜LG가 경영재산과 개인재산 담당자를 따로 두고 관리한다는 사실이 이번 재판에서 알려졌다.
하 사장은 경영재산과 개인재산을 구분할 수 있냐는 세 모녀 측 질문에 "보면 바로 알 수 있다"며 "두 재산은 다른 직원이 나눠 관리한다"고 답했다.

재판부가 구본무 회장의 주식을 경영권 확보용 '경영재산'으로 인정하면 구광모 회장의 지분율은 현재대로 유지된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회장이 가지고 있던 ㈜LG 지분 11.28% 중 대부분인 8.76%를 상속받았다.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씨는 2.01%, 0.51%의 지분을 상속받았다.
올 6월 LG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구광모 회장의 지분은 15.95%, 김영식 여사는 4.20%, 구연경 대표 2.92%, 구연수씨 0.72% 등이다.
세 모녀 전부 합쳐도 7.84%로 구광모 회장의 절반에 못 미친다.
반면, 구본무 회장의 개인재산이 명백한 부동산, 미술품 등은 세 모녀가 물려받았다.

그러나 세 모녀는 구본무 회장의 ㈜LG 주식을 '개인재산'이라고 주장한다.
구본무 회장이 장자승계에 관한 명확한 유언을 남기지 않았고 ,따라서 지분을 법정비율로 나눠야 한다는 논리다.
재판부가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구본무 회장 지분 11.28%를 법정 비율(배우자 1.5 대 자녀 1인당 1)로 나누게 된다.
그러면 구광모 회장은 총 9.7%, 김영식 여사는 7.95%, 구연경 대표는 3.42%, 구연수씨는 2.72%를 보유하게 된다.
세 모녀의 지분을 합치면 14.01%로 구 회장의 지분을 5%p 가까이 앞서게 된다.

◆재판부 조정 제안…계열사 나누나= 세 모녀는 구본무 회장의 유지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재판 과정에서 나왔다.
가족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구연경 대표는 "(구본무 회장의) 유지와 상관없이 분할 합의는 '리셋'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용규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결국 구본무 회장의 유언 존재 여부가 재판 결과를 결정할 유일한 쟁점"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지난 16일 2차 공판에서 양측에 조정을 제안했다.
세 모녀 대리인은 "조정에 응하도록 원고를 설득해보겠다"고 말했다.
구광모 회장 대리인은 "(구광모 회장에게 조정에 응할지) 의사는 물어보겠지만, 재판에서 모든 증거를 확인한 뒤에 소송을 끝내야 진실에 가까운 결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에선 세 모녀가 현금 흐름이 안정적인 주요 계열사 2곳을 요구할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재판부는 증인으로 채택된 강유식 전 LG경영개발원 부회장 증인신문에 앞서 다음 달 19일 변론준비기일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