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우크라의 악몽 된 X-마스
각국 순례자들 모이던 베들레헴
이·하마스 전쟁에 성탄행사 실종
이, 난민촌 공습… 최소 70명 숨져
‘2번째 성탄’ 우크라도 포탄 쏟아져
프란치스코 “평화 설 곳 없어” 호소
사랑과 평화, 용서의 상징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했어야 할 올해 크리스마스가 중동과 유럽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이 뿌린 피로 얼룩졌다.
 | 포탄으로 만든 트리 러시아와의 전쟁이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19일(현지시간) 시민들이 포탄 장약통과 로켓 부품 등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곁을 지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연합뉴스 |
매년 성탄절마다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예수 탄생지 베들레헴은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이 몰려들어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가 펼쳐지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인 25일(현지시간) 이곳의 거리는 고요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의 여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을뿐더러 수많은 주민이 가족과 친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크리스마스 기념 행사도 취소됐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거대 트리 점등식도 취소됐고, 크리스마스 전야를 기념하는 거리 행진도 ‘무음 행진’으로 대체됐다.
트럼펫과 드럼 등을 연주하며 퍼레이드에 참가했을 아이들은 ‘죽음 대신 삶을’, ‘우리의 마음은 가자에’ 등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조용히 행진했다.
전날 성탄 전야 미사를 위해 베들레헴을 찾은 피에르바티스타 피차발라 예루살렘 라틴 대교구장(추기경)은 이날 흑백 체크무늬의 팔레스타인 전통 스카프를 두르고 나타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한 연대를 표현했다.
피차발라 추기경은 “매우 슬픈 성탄절”이라며 “우리는 끔찍한 전쟁 속에 있고, 우리의 마음은 가장 먼저 가자지구와 그 사람들에게 향한다”고 말했다.
그는 “휴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며 “폭력은 폭력만을 낳는다.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6500여명의 신자 앞에서 세계 평화를 호소했다.
직접 이스라엘이나 가자지구를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밤 우리의 마음은 베들레헴에 있다”며 이곳에서 “평화의 왕(예수)이 전쟁의 헛된 논리와 무력 충돌에 의해 오늘날에도 세상에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종전 촉구 행진 나선 스카우트 대원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거리에서 현지 스카우트 대원들이 ‘우리는 죽음이 아닌 삶을 원한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거리에 서 있다.
베들레헴=AFP연합뉴스 |
이스라엘군은 성탄 연휴 동안 공격 강도를 더욱 높였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날 이스라엘군이 마가지 난민 캠프를 공습해 최소 7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날 밤 서안지구 제닌 난민 캠프에서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이스라엘 군인도 지난 22일부터 크리스마스 전야 사이에 최소 16명이 숨졌다.
100여년 만에 처음으로 12월25일을 성탄절로 기념한 우크라이나 곳곳에도 러시아의 포탄과 드론 공격이 쏟아졌다.
러시아정교회 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는 그간 1월7일(율리우스력 기준)을 성탄절로 삼았으나, 개전 뒤 러시아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지난 7월 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12월25일로 바꿨다.
외신에 따르면 24일 남부 헤르손의 아파트와 민가가 포격을 받아 87세 남성과 81세 여성 부부 등 5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은 “적에게는 휴일이 없다”며 “적이 우리 국민을 죽이고 우리 땅에 남아 있는 한 우리에게도 휴일은 없다”고 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 지역의 20개 마을에도 드론 공격을 가해 부상자가 2명 발생했다고 주지사가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수도 키이우의 성 소피아 대성당 앞에서 촬영한 성탄 전야 연설을 통해 “결국 어둠은 질 것이고 악은 패배할 것”이라며 항전 의지를 다졌다.
유럽 곳곳에서도 성탄절을 맞아 보안 조치를 강화했다.
독일 경찰은 이·하마스 충돌의 여파로 자극받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관광 명소인 쾰른 대성당을 공격할 것이라는 경고를 접수하고 지난 23일 성당을 수색했다.
오스트리아·프랑스·스페인도 성탄절 연휴 동안 기독교 행사에서 테러 대응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윤솔·유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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