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새벽 도봉구 아파트 화재
4층 가족 엄마·두 아이는 무사
30대 남 2명 사망… 부상 36명
10층 거주 30대… 119 최초 신고
11층 계단서 발견… 이웃들 눈시울
3층서 발화 윗층으로 순식간 번져
대피중 다수 넘어지고 연기 흡입
“이 동네에서 20년간 살면서 화재 한 번 없었는데 사망자까지…. 마음이 너무 안 좋다.
”
성탄절인 25일 2명의 사망자와 36명의 부상자(3명 중상·33명 경상)를 낸 화재가 발생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아파트 단지 주민 이모(27)씨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전날 밤부터 내린 새하얀 눈이 아파트 단지를 뒤덮은 가운데 이날 새벽 발생한 화재로 23층 아파트의 외벽은 15층 너머까지 새까맣게 그을렸다.
 | 연휴 마지막 날이자 성탄절인 25일 새벽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30대 남성 2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쳤다.
사진은 이날 오전 4시 57분쯤 아파트 건물 3층 내부에서 시작된 불이 위쪽으로 번지는 모습.소방재난본부 제공 |
최초 화재가 발생한 3층과 그 위층인 4층은 유리창까지 모두 산산조각이 나 긴급했던 당시 상황을 드러냈다.
화재 당시 정신없이 대피한 탓에 겉옷도 챙겨 입지 못한 채 잠옷 차림으로 대피한 이들은 처참히 전소하거나 소실된 아파트 내부를 바라보며 황망해했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13층에 거주하는 권모(51)씨는 “새벽 5시에 둘째 아이가 깨워서 부랴부랴 옷을 입고 현관문을 여니 연기가 이미 자욱하고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며 “관리사무소에 연락하니 나가지 말고 집안에서 대기하라고 해서 살았는데, 이웃들 사망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며 애도했다.
구청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57분쯤 도봉구 방학동의 한 고층 아파트 3층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 당국은 차량 57대와 인력 220여명을 동원해 화재를 진압하고 주민 200여명을 대피시켰지만, 30대 남성 2명이 끝내 숨지고 3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들은 대피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연기를 흡입하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
불길은 오전 6시37분쯤 대부분 잡히기 시작해 신고 접수 약 3시간43분 만인 오전 8시40분쯤 완진됐다.
소방 당국은 현장 잔해물을 정리하며 정확한 사망 원인과 화재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특히 모두가 잠든 시각 발생한 화재로 끝내 숨진 2명 중 한 명인 박모(33)씨는 아내 정모(34)씨와 함께 두 아이를 지키려고 4층에서 밖으로 뛰어내리면서 사망한 것으로 조사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7개월 된 둘째를 감싸 안은 채 뛰어내렸지만 추락 후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돼 끝내 숨졌고, 아내 정씨는 두 살배기 첫째를 재활용 쓰레기봉투 더미 위로 던진 후 그 위로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
현재 아내 정씨와 두 아이는 다행히 위급 상황을 벗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검게 그을린 외벽 25일 오전 4시57분쯤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고층 아파트 3층에서 시작된 불로 30대 남성 2명이 숨지고 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날 화재로 해당 아파트 외벽은 15층 너머까지 새까맣게 그을렸다.
연합뉴스 |
또 다른 사망자인 임모(38)씨는 10층 거주자로, 11층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숨진 임씨는 이번 화재의 최초 신고자로, 임씨는 119 신고 후 가족들을 모두 내보내고 가장 마지막으로 탈출하면서 많은 연기를 흡입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이 난 3층 집 거주자인 70대의 부부 2명은 밖으로 뛰어내려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연기 흡입으로 인해 심폐소생술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연이은 비극 속에서도 희망적 소식도 들려왔다.
숨진 박씨와 임씨 외에 20층 현관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던 70대 여성은 극적으로 의식을 회복했다.
같은 층 이웃 주민 우모(48)씨는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갔다가 연기가 너무 심하니 다시 현관문을 못 찾으셨다고 들었다”며 “매일 뵙는 분이었는데 못 볼까 봐 걱정했는데, 할머니께서 중환자실에서 회복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밖에 나온 주민들은 내리는 눈을 피해 우산을 쓴 채 배부받은 비상용 핫팩을 들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화재 현장을 올려다봤다.
일부는 정신없이 대피한 탓에 맨발 또는 잠옷 차림이거나 제대로 겉옷도 챙겨 입지 못한 상태였다.
 | 연휴 마지막 날이자 성탄절인 25일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쳤다.
사진은 이날 사고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부부는 “‘펑’ 소리가 나서 나와 봤더니 불이 났다고 하더라. 집 안이 온통 그을음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주민 나모(65)씨는 “이 아파트에 20년을 살았는데 화재는 처음”이라며 “성탄절에 이게 무슨 난리인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도봉구청은 이날 현장에 통합지원본부를 꾸려 구호물품을 배포하고, 이재민 지원에 나섰다.
이날 오후 3시30분쯤까지 연기, 그을림 등 28건의 피해가 접수됐고, 해당 아파트의 7세대가 임시숙소를 신청했다.
피해 주민들은 이날 오후 8시까지도 집안에서 빠지지 않는 연기와 공동현관에 자욱이 남은 잿가루 등으로 인한 피해를 토로했다.
구청은 도봉구 내 모텔 세 곳에 임시숙소를 마련하고, 자택이 전소되거나 남은 연기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재민들을 긴급 지원하고 있다.
이날 아파트 인근 경로당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는 이재민들을 위한 도시락 70개와 적십자 구호물품 30박스, 기초생필품 70개 등이 우선 구비됐다.
피해 주민들은 하나둘 대피소를 방문해 비상식량을 받아 가며 서로의 안부를 살폈다.
아파트 측도 “경로당 앞에서 비상식량을 나눠드리고 있다”라고 안내 방송을 하며 주민들을 독려했다.
이날 오후 6시쯤 구청 직원들이 임시 대피소를 떠난 후에도 피해 주민들이 행여나 방문할까 같은 단지 주민 세 명이 늦은 밤까지 대피소를 지켰다.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26일 합동 현장감식을 진행할 방침이다.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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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날 참 안타까운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