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전공의 회동’ 의미·전망
의료체계 문제점 등 공감대 관측
대통령실은 ‘대화 물꼬’ 의미 부여
전공의들 “회동 대표성 없어” 반발
“사전투표 하루 전 저의 의심” 주장
증원 집행정지 신청 3번째 각하
전체 전공의 93%가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이탈한 지 44일 만에 의대 증원의 키를 쥔 대통령과 의료 공백 당사자인 전공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나 140분간 대화했지만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4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가 떨어진 벚꽃을 줍고 있다.
연합뉴스 |
그간 윤석열 대통령은 ‘2000명’ 증원을 고수했고 전공의 측은 사직의사를 밝힌 뒤 병원을 떠나며 증원 ‘백지화’를 요구해 왔는데, 이번 만남에서도 긴 평행선을 확인하는 데 그친 것으로 관측된다.
◆박단 “의료 미래는 없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2시간 20분간 대화를 한 뒤 기자들에게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단체 문자를 보냈고, 이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같은 내용을 적었다.
대통령실 김수경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은 향후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과는 뉘앙스가 크게 다르다.
이날 면담은 오후 4시20분쯤 끝났다.
오후 6시28분 단체 문자가 전송된 만큼 2시간가량 비대위와 면담 내용을 검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만남이 비공개로 이뤄지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입장 차이가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박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의대 증원 2000명 방침을 놓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대화에서 박 비대위원장이 현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전공의 처우와 근무여건 개선에 대해선 일부 공감대를 형성했을 수 있다.
의료계는 회담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박 비대위원장 SNS엔 “간 것 자체가 문제다.
결과가 뻔했고 총선 앞두고 노력했다고 변명할 거리만 던져줬다”거나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에 명분만 준 것 같아 유감”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용당했든 뭐든 마지막 노력은 의미 있었다”, “대화하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등 만남 자체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반응도 많다.
 |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관계자와 내원객이 휴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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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다녀온 전공의, ‘탕핑’ 강화?
전공의들은 정부의 갖은 복귀 회유에도 ‘탕핑’(?平·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저항)으로 대응해왔는데, 이번 회담으로 탕핑 기류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실제 대전협 비대위는 이번 회담 직전 ‘총선을 앞두고 이용당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내부 공지를 통해 “정부가 이번 만남을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하면 ‘대화는 했지만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다시 누우면 된다”고 밝혔다.
당초 전공의들이 윤 대통령의 만남 제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인 건 의대 증원 2000명 방침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줄곧 “2000명 증원은 최소한이고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해 왔다.
이에 전공의 측에선 현 상황을 풀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에게 정책의 부당함을 직접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박 비대위원장도 이번 회동에 대해 “대전협 비대위 내에서 충분한 시간 회의를 거쳐서 결정한 사안”이라며 “현 사태는 대통령의 의지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대화 물꼬’에 방점
대통령실도 이번 만남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대통령실은 면담 결과에 대해 “박 비대위원장 측에서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섣불리 결과를 해석해 전달하면 이번 면담을 정무적으로 활용한다는 오해와 반발이 뒤따를 것을 우려해서다.
명확한 결과를 내지 못한 것도 이유일 수 있다.
140분간 진행된 면담 결과에 대한 설명은 약 200자의 대변인 서면 브리핑이 전부였다.
대통령실은 대화의 물꼬를 튼 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다.
당초 전공의 내부 의견이 통일되지 않은 데다 일각에선 여전히 의대 증원 방침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이번 면담을 통해 전격 합의를 이루기는 애초에 어려워 보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대화를 시작점으로 보고, 의정 대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일 윤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 전까지만 해도 ‘의대 2000명 증원’에 대해선 타협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의료계 집단 반발이 7주째 이어지고 총선 코앞에서 여권의 부담이 커지자 대화 여부에 따라 일부 조정이 가능하다는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국민 불안과 불편이 가중될 경우 의료개혁 구상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한 의료관계자가 이동하며 이마를 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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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단 회담’ 전부터 부정적
이번 회담을 계기로 전공의가 더욱 뭉칠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내부 분열이 일 가능성도 있다.
전공의들은 이번 만남이 이뤄지기 전부터 부정적 의견을 쏟아냈다.
이날 만남이 전체 회원의 대의를 모은 게 아닌, 대전협 비대위의 독단적인 결정이라는 이유에서다.
전공의 커뮤니티에는 이날 만남이 진행되기 약 1시간여 전에 대화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 의사 커뮤니티에는 “이번 사태를 촉발한 정부가 스스로 해답을 가져올 때까지, 최소한 총선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다 함께 한 달 반을 버텼는데, 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느냐”는 비판의 글이 올라왔다.
박 비대위원장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주장도 나왔다.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순간 (박 비대위원장의) 대표성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이에 지난달 20일 내놨던 의대 증원 철회 등 “7대 요구안에서 벗어나는 밀실합의는 없다”는 입장을 냈지만 ‘현 비대위를 끌어내리기 위해 학교별, 의국별 박 비대위원장 및 비대위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는 기류마저 흘렀다.
한편 전공의·의대생·수험생이 의대 증원을 막아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은 이날 법원에서 또 각하됐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제기된 집행정지 신청은 모두 6건으로, 이번 건을 포함해 3건이 비슷한 이유로 각하됐다.
정재영·이정우·이현미·이지민·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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