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이원석 검찰총장
무혐의 마무리 땐 ‘봐주기 수사’ 비판
李 총장 ‘법 앞에 평등’ 발언도 무색
내달 퇴임… 임기내 처리하기엔 ‘촉박’
金 여사가 가방 소유권 포기할 경우
공매 거쳐 현금화한 후 국고에 귀속
최목사 “반환” 檢 “공여자 권한 없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22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검찰은 이날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선 “계속 필요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에게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직권 소집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더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말을 아꼈다.
이 총장은 이날 오후 이 지검장의 주례 정기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김 여사 무혐의 불기소 처분이 담긴 명품 가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오후 3시로 예정됐던 주례 정기 보고는 예상보다 지연된 오후 4시쯤에서야 이뤄졌다.
이 총장이 올해 5월 중앙지검에 전담 수사팀 구성과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지 약 4개월 만이다.
 | 무거운 출근길 이원석 검찰총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 총장은 이날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았다.
뉴시스 |
당초 법조계 내에선 이 총장이 검찰수사심의위를 직권 소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대검에 설치된 검찰수사심의위는 검찰 수사의 절차와 결과에 대한 국민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다.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처럼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 계속 여부,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 여부, 처분된 사건의 수사 적정성과 적법성 등을 심의한다.
다만 법조계 내에선 수사심의위를 소집해 이 총장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별로 없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중앙지검장이 총장에게 보고를 하기도 전에 무혐의 처분이란 수사 결과가 이미 밖으로 알려진 현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수사 결론이 바뀌는 것 아닌 이상에 현 상황에서 수사심의위를 연다고 국민 신뢰를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결국 어떤 결론이든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고, 수사팀 결론도 뒤집을 수 없다는 게 이 총장이 처한 딜레마라 할 수 있다.
또다른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법리적으로 무혐의를 내릴 수 밖에 없는 사건”이라면서도 “그럴 거면 수사를 진작에 마무리 지었어야 했는데 너무 오래 끌다보니 모양새가 좋지 않게 됐다”고 언급했다.
◆李 총장 ‘딜레마’ 왜?
이 사건 수사는 지난해 12월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가 김 여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시작됐다.
이 총장은 5개월이 지난 올해 5월2일 중앙지검에 전담 수사팀 구성을 지시하며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 | 김건희 여사(왼쪽), 최재영 목사. 연합뉴스 |
이 총장이 지시한 뒤에야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김 여사에게 명품 가방 등을 건넨 최재영 목사 고발인 조사(5월9일)를 시작으로, 최 목사(5월13일), 김 여사 고발인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5월20일), 참고인인 대통령실의 조모 행정관(6월19일)과 유모 행정관(7월3일) 등 사건 관계인들 조사가 이뤄졌다.
김 여사가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대통령경호처 부속 청사에서 비공개 대면 조사를 받으며 수사는 정점을 찍었다.
이 총장은 이 지검장의 사후 보고로 ‘패싱’ 논란이 거셌던 지난달 22일 ‘법은 신분이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는 한비자의 법불아귀(法不阿貴)를 인용하며 “국민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이어 “앞으로 남은 수사와 처분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원칙이 반드시 실현되도록 제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검찰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는 건 다름 아닌 ‘처벌 공백’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직무와 관련한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 수수를 금한다.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이 해당된다.
공직자 배우자에게 수수가 금지된 금품 제공을 약속하거나 의사 표시만 해도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데, 공직자 배우자 처벌 조항은 없다.
이는 이 총장이 검찰수사심의위를 소집해도 결론이 뒤집힐 수 없는 주된 이유다.
더욱이 이 총장은 다음 달 15일 임기 2년을 마치고 물러나는 상황이다.
◆문제의 가방 어디로
검찰 수사에도 ‘문제의 가방’을 처분해야 하는 과제는 남아있다.
대통령실이 지난달 26일 검찰에 임의 제출한 해당 가방은 압수물로, 원칙상 김 여사에게 돌려줘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 또는 유류한 물건’은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는데, 압수물은 피압수자에게 환부하는 게 원칙이다.
이른바 ‘제출인 환부’다.
 | | 디올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다만 검찰이 김 여사에게 가방 소유권 포기 의사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법무부령 검찰압수물사무규칙에 따라 검사는 ‘범죄에 이용될 염려가 있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우려가 있는 압수물, 법령상 생산·제조 또는 유통이 금지된 압수물, 경제적 가치로 보아 환부의 실익이 없는 압수물, 그 밖의 사유로 환부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는 압수물’에 대해선 소유자에게 소유권 포기 의사의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이 규칙상 소유자의 소유권 포기 의사가 있는 압수물은 국고에 귀속한다.
김 여사가 가방 소유권을 포기할 경우엔 매각, 즉 공매를 거쳐 현금화해 국고에 귀속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가방은 프랑스 명품 크리스챤 디올의 ‘레이디 디올 파우치’로, 시가는 300여만원이다.
압수물 공매는 한국자산관리공사 전자자산처분시스템 ‘온비드’에서 이뤄진다.
예정 금액, 즉 최저 입찰가 이상의 최고가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하되, 동일한 금액을 2명 이상이 입찰한 경우엔 무작위 추첨으로 이뤄진다.
중앙지검은 2021년 롤렉스 등 고가의 명품 시계 3점을 공매에 부쳐 4억7747만여원을 국고에 귀속한 바 있다.
최 목사는 검찰에 가방 반환을 요청한다는 입장이지만 돌려받을 확률은 희박하다.
검찰 관계자는 “공여자는 압수물 반환 청구 권한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검찰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수사도 남아 있다.
다음 달 12일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 등 일당의 항소심 선고 결과가 김 여사 처분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이날 “(주가 조작에 돈을 댄) 전주들 소환 조사는 계속 진행 중”이라며 “필요한 수사를 진행하고 마치면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지, 2심 결과를 보고 처리하겠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박진영·유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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